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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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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선학대학교의 법회·문답입니다.

제목 (설교) 원기 110년 10월 23일 목요예회 설교 (이혜진_참참참)
작성자 이혜진
작성일 25-10-25 19:37

본문

참참참

  

  세상에 전과(前過)를 뉘우치는 사람은 많으나 후과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적으며, 일시적 참회심으로써 한 두 가지의 복을 짓는 사람은 있으나 심중의 탐··치는 그대로 두나니 어찌 죄업이 청정하기를 바라리요. 이 내용은 정전 제3 수행편 제8장 참회문에 들어있는 문장입니다.


  어릴적 부모님께 용돈을 받고 살던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은 내 자식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함께 간식도 먹고, 재밌게 놀 수 있도록 그 나이 또래가 쓸 만한 금액을 정하여 용돈을 줍니다. 하지만 다들 경험하셨다시피 용돈이란 것은 받아 쓰면 쓸수록 모자람을 느낍니다. 용돈을 더 달라 요구하는 것도 한 두 번이고, 부모님들은 그런 요청을 잘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이럴 경우, 몇몇 아이들은 몰래 부모님의 방에 들어가 지갑에서 돈을 훔쳐버리는 선택을 하고 맙니다. 부끄럽게도 저 또한 부모님의 지갑을 터는 아이에 속했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이 어찌나 그렇게 맛있어 보이던지. 저는 부모님이 집을 비우시는 틈을 타 지갑에서 몰래 돈을 훔쳐 친구들과 군것질 하는 맛을 들여버렸습니다. 그렇게 천원으로 시작한 도둑질은 오천원을 넘었고, 불행 중 다행 만원이 되기 전에 부모님께 들켜 호되게 혼난 기억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와, 이러다간 큰일 날 것 같은데? 하는 소위 뒤통수가 싸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주로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할 때 이런 자각이 자주 듭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해야 하는 것을 놔두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을 때 이런 경험을 합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과제를 두고 SNS나 쇼츠, OTT, 유튜브와 손잡고 주말을 즐겁게 보내다가 일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헐레벌떡 할 일을 하는 삶은 참 고치기 힘든 고질병이나 다름없습니다.

해야 하는 일이, 하고 싶은 것보다 더 중요하고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확률로 하고 싶은 것을 먼저 선택하고 맙니다. 이 이유는 만악의 근원인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욕심을 참지 못해서, 그리고 끊지 못한 습관에 이끌려 결국 하고 싶은 것을 먼저 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빤히 보이는 인과가 다가오는데도 자꾸 습관적으로 업을 짓고 고통받는 우리입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정말로 이 반복되는 챗바퀴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강한 의지와 분발심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때 제일 필요한 것이 바로 참회입니다.

참회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선택한 그릇된 일을 뉘우치고 스스로 꾸짖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전에 했던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철저히 방비하고 노력하는 것까지가 제대로 된 참회라 할 수 있습니다. 잘못을 뉘우치기만 하고 끝나는 것은 맞아, 내가 예전에 그런 나쁜 짓을 했었지.’ 같이 전에 지은 악업을 재확인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이런 참회 방식은 후에 반드시 똑같은 악업을 반복하게 됩니다.

보통 참회라고 하면 두 가지를 떠올립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사참과 이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참과 이참이 함께 되어야 진정한 참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 쪽으로 치우친 노력은 제대로 된 참회가 아닙니다. 보통 참회를 한다고 하면, 내가 지은 죄업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진리전에 뉘우치며 심고와 기도로 굳게 다짐한 뒤 세상에 은혜를 베푸는 보은행을 하게 됩니다. 이 반쪽짜리 참회는 뉘우치긴 열심히 뉘우쳐 놓고 나중에 가서 또다시 후과를 범해 자꾸 악업을 쌓는 상황을 만듭니다.

후과를 자꾸 범하는 이유는 마음속 번뇌망상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욕심과 사심으로 얼룩진 마음은 나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습관과 업에 끌린 판단을 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못하게 하려면 이참이 필요합니다. 이참을 통하여 삼독심을 제거하려면 내 마음에는 원래 그 어떤 욕심이나 분노, 어리석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일과를 진행하다 뒤통수가 싸해지는 순간이 오면, 관성적으로 해나가던 행동이나 생각을 멈추고 먼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습관적으로 욕심을 품고 있거나, 화를 내고 있거나, 어리석은 마음을 먹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원래 이런 불순물이 담겨있지 않고 텅 비어있습니다. 삼독심을 제거하여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려면 마음이 원래 비어있다는 것을 알고 본래 자리로 되돌아가려 노력해야 합니다. 대산 상사님께서는 이참의 방법으로 걸림없는 선정과 염불 삼매, 송주 삼매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좌선으로 마음을 집중하여 끓어오르는 망념을 제거하고 염불 삼매를 통해 천만 가지로 흩어진 정신을 일념으로 만들며 송주를 통해 나를 빗대보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자연스레 마음의 번뇌 망상이 씻겨 내려가고 공한 자리를 깨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이참과 앞서 말씀드린 사참을 함께 실행하는 것이 진실된 참회를 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이참과 사참을 함께 챙기더라도 참회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작년부터 개인적으로 연마하고 공부하고 있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살아오며 켜켜이 쌓인 상을 내려놓는 것을 목적한 공부인데, 나름 1년간 노력하다 보니 과거의 이혜진과 비교하면 참 많이 상을 내려놓았구나, 하는 감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만큼 참회하고 노력했으니까, 하고 성취감과 소소한 행복감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건 섣부른 만족이었습니다. 체력이 저하되고 몸 상태가 나빠지자,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상이 또다시 불쑥 올라와 마음을 꽉 채워버렸습니다. 어느새 전과 같이 상을 있는대로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보니 지난 1년의 노력이 참 허망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하고 자세히 생각해 보았더니, 잠깐의 방심과 자만으로 풀어진 마음이 체력고갈과 만나, 마치 늘어난 고무줄이 탁- 하고 풀어진 것처럼, 지난날의 습관과 쌓인 업력이 한순간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이는 제거했다고 생각한 저의 삼독심이 여전히 저 깊은 아래에 깔려 여전히 도사라고 있었고, 결국 제대로 된 참회가 이루어지지 않아 전과 똑같은 후과를 범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랜 시간 쌓인 습관과 업은 가벼운 마음으로는 쉽게 고칠 수 없습니다. 어려도, 부모님의 지갑에서 돈을 몰래 훔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둑질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진심 어린 참회라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잘못 했으니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막연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참회를 반드시 해야겠다,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진심으로 이 습관과 업력을 끊어버리겠다는 강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이 마음으로 진심으로 전과를 뉘우치고, 후과를 다시 범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사참 이참을 병행하여 마음의 삼독심과 분별심을 함께 녹여내는 실질적 참회를 해야 합니다. 좀 해보다 마는 것이 아닌 오래오래 계속해야 합니다. 밥 먹듯이 해야 합니다. 그리 해야 진정한 참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린 설교의 제목은 참참참 입니다. 다들 알고 계시는 참참참! 이 아니라 사참과 이참과 진참회 라는 뜻입니다. 성공하기를 원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 참회, 공을 들여도 반복되는 후과로 지쳐가는 우리. 관념적이고 단발성인 뉘우침에서 벗어나 끊임없는 적공으로 진참회를 해 나아가, 영원히 참회개과 하는 공부인이 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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