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설교) 원기 110년 11월 13일 목요예회 설교 (박선경_죽여주는 치트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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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박선경 |
| 작성일 | 25-11-13 2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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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죽여주는 치트키>
<전제>
낙을 버리고 고로 들어가는 원인
2) 가령 [고락의 근원을] 안다 할지라도 실행이 없는 연고요,
이상 정전 수행편 고락에 대한 법문 중 말씀입니다.
<유도>
이번에 소인모 행사를 준비하면서 엄마 생각이 진짜 많이 났어요. 여기 영산에서 공부를 하면서 엄마가 제가 어렸을적 부터 자주 하셨던 말이 종종 생각 나곤 합니다. “너가 진짜 하고 싶은게 생기면 바이올린도 공부도 그만둬도 좋다. 그게 줄넘기라도 좋다. 너가 진짜 줄넘기가 너무너무 재밌고, 평생 줄넘기 선수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하면 내가 응원해줄거야. 다만, 네가 네 줄넘기를 찾으면 아무도 안 시켜도 줄넘기 연습을 매일 매일 하고 싶을 거고, 몸은 고되더라도 마음은 기쁠거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시고 중요시 하는 분인데도 이렇게 말을 하실만큼, 저가 진짜 다 내걸고 할 만큼 하고 싶은 것을 찾고, 그걸 실천하면서 행복하게, 재미있게 살기를 항상 바라셨던 것 같아요.
<전개>
그래서 제가 바이올린이고 공부고 다 제끼고 선택한 길이 바로 전무출신의 길입니다. 알고보니 저의 줄넘기는 대종사님의 훈련법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예전에는 종교라면 학을 떼셨음에도 불구하고, 어릴적 제게 하신 말씀 그대로, 제가 가는 이 길을 응원해주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저에게는 이 공부가 반드시 저의 줄넘기여야 합니다. 아무도 안 시켜도 매일 매일 하고 싶고, 힘들더라도 마음은 기쁜, 그 것 말이죠. 그래야 하는데… 하다 보니까 답답하고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날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행복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순간들이 찾아왔습니다. 왜 그런가 들여다보니, 한 중요한 방면에서 취사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정전 교의품 작업취사 장에서 말씀하셨듯이, 실제 일을 작용하는 데 있어 실행을 하지 못하였더니 수양과 연구가 수포에 돌아갈 뿐이었고, 실효과를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나는 나름 힘들여 했다는 공부가 물거품이 되는 것을 체험하는 그 순간들에는 행복과 재미는 저한테서 아주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 공부는 제 줄넘기니까, 행복하게 재밌게 살아야 하니까, 기어이 실효과를 얻고 재미를 찾아야겠더라고요. 그러니 오늘은, 왜 취사가 잘 안 되는지, 왜 취사를 힘들어도 해야하는지, 그리고 취사가 되게 해주는 치트키가 있다는 것을 함께 풀어보고자 합니다.
지난 1년간 함께 생활하면서 아마 많이들 보셨을 것인데, 저는 용단력이 부족해서 놓아야 할 일을 붙잡고 그 다음 일에 제 때에 도착하지 못하는 강력한 업력이 있었습니다. 영산 들어오자마자 저는 이 시간약속을 잘 못 지키는 악습을 한번 고쳐보자! 하고 유무념으로 잡았고, 2월에서 9월까지 그 공부를 했다가, 놓았다가, 또 잡았다가를 반복했습니다. 9월말에 제 유무념 비율은 정확히 1대1이었고, 이 때 까지 제 유무념 공부는 재미가 없어도 너무 없었습니다. 그렇게 9월은 끝났고, 10월이 됐는데요. …10월 말에 제 유무념 비율은 138유념 대 25무념이었습니다.
이 실행까지 가는 길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힘을 기르려면 비례하는 힘을 들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우리가 실천하려고 할 때 우리 마음 가운데 무엇이 들어서 장애가 되고 있나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과연 취사는 왜 이렇게 잘 안될까요?
이 답은 작업취사 장에 있습니다.
“일에 당하여 시비를 몰라서 실행이 없거나, 설사 시비는 안다 할지라도 불 같이 일어나는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철석같이 굳은 습관에 끌리거나 하여 악은 버리고 선은 취하는 실행이 없는 까닭[이죠].”
뒤돌아보니, 저는 이 중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세가지가 모두 한꺼번에 제 마음 가운데에 들어서 장애가 되고 있었습니다. 마장 파티였죠! (ㅎㅎ)
내가 지금 하고있는 이걸 더 잘 하려고 해야 할지, 끊고 가야 할지, 가리를 못 내고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즉, 시비를 몰랐죠.
뭘 조금이라도 더 잘 하려는 마음도 크게 작용했고, 짜투리 시간을 최대한 쥐어짜려고 일을 무리하게 벌려놓기도 했습니다. 욕심을 제어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어—아닌데—지금 끊고 가는게 맞는데? 하면서도 결국 굳은 습관에 끌려서 2분, 5분, 심지어 15분 늦게 도착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우리가 그 어떠한 업장, 어떠한 상황을 마주하여 취사를 하려고 애쓰고 있다면, 이 세가지가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들어가야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그럼 마장은 그렇고, 나는? 우리는 왜 기어이 취사를 해야하나요? 수양과 연구만 해도 힘든데…
우리는 결국 업력에서 자유를 얻고, 고락을 초월하고, 참된 낙을 수용하기 위해서 이 공부길을 가고 있습니다. 정전 수행편 <고락에 대한 법문>에 대종사께서는 <낙을 버리고 고로 들어가는 원인>중 1번과 2번이 모두 고락의 근원을 알든 모르든 간에 실행이 없는 것이라고 밝혀주셨습니다. 반대로 말해서, 괴로움의 만병통치약은 바로? 바른 실행인 것입니다.
2월에서 9월 사이에 저는 시계를 진~~짜 자주 봤고 “늦으면 안돼!”라는 생각을 진짜 자주 했지만, 행동으로까지 그 결심을 끌고 나가지 못했을 때에는 고가 어쩔 수 없이 따랐습니다. 그러다가 9월에는 저는 한 도반한테 이런 말을 듣습니다. “낙원 건설 하겠다는 서원 갖고 실컷 공부해 놓고, 계속 시간 약속 어겨서 신용 다 깎아먹고 사람들 다 떨어져 나가면… 나중에 누구랑 낙원 건설할건데요?”
그 때 아, 강제로 서원반조를 당할 수도 있구나, 알게 되었고, 이 말에 살짝 충격을 먹고 각성을 하고는 어…나 어떻게 하지? 고민 하다가, 솔성요론 13, 14조에 나오는 죽기로써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기 싫어도 죽기로써 할 것이요, 부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죽기로써 아니할 것이요.”
처음에는 ‘죽기로써’ 하라는 말씀이 ‘이것 갖고 공부하기 진짜 싫어도 참고 그냥 억지로라도 해라’라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죽기로써’라는 입력값은 치트키입니다. 우리가 ‘죽기로써’라는 이 입력값을 잘 입력했을 때에, 이 것이 우리에게 음양상승과 생사의 진리를 실생활에서 써먹게 해줍니다. 게임 필드를 내 편으로, 내 캐릭터의 실행력을 무한으로 만듭니다.
적당히 마음을 먹어서 변화를 이루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과 감정을 소모합니다. 변화는 극하면 일어납니다. 변화는 극해야지 일어납니다. 대종사님께서 그리도 사랑하시는 우리들에게 실행공부를 죽기로써까지 하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이치를 수학 공식처럼 갖다 쓰라는 말씀입니다. 새 삶의 방식을 얻기 위해서는 그 반대 극으로 가서 ‘죽음’을 택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대종사님께서 가르쳐 주신 실행 공부법은, 극하면 변하는, 죽으면 살아나는 우주의 이치를 내 손 안에 놓고 부려서, 변화의 원리를 손수 땡겨 쓰게 해주는 자비의 ‘비밀 코드’입니다.
그럼, 치트키가 있으면 입력을 해야하겠습니다. 어디다가 어떻게 입력할까요? (...?) 허공법계에. 기도로. 맹세 기도로써 ‘죽기로써’를 ‘우주’라는 컴퓨터, ‘진리’라는 컴퓨터에 입력을 합니다.
제가 ‘그럼 나 어떻게 하지?’하고 있을 때, 마침 그 쯤 수업 시간 때, 선배들이 진리전에 맹세를 올리고 탁월한 효과를 봤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사실 약간, “나한테 진짜 좋은 약이 있는데”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 업력을 돌파해야겠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중간고사 기간과 전산상사님 훈증을 코앞에 두고, 7일간 용단력 실천을 할 것이며, 이 맹세를 어기면 그 어떤 과보도 받겠다는 맹세를 냅다 올려버렸습니다. 근데 진짜 죽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걱정도 내심 되었고, 지금까지 어설픈 각오로 공부를 하는 것도 힘들었어서, 실제로 실천의 성과를 내기까지는 더더욱 힘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맹세를 진리 전에 올린 그 날부터 실행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안되면 죽기로 하니까, ‘일단 그냥, 가야 할 것 같으면 무조건 끊고 가’ 이렇게 사고 전환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유무념 공부에 대한 저의 괴로움 수치는 딱 하루만에 한 92에서 13로 내려가고, 재미 수치는 15에서 93로 치솟았습니다. 죽여주는 치트키 아닙니까?
이렇게 허공법계, 즉 우주만유 전체의 기운을 통해 나의 변하고자 하는 진심을 진리의 공식에 입력을 했을 때 마침내 게임 필드는 내 편이 되고, 내 캐릭터의 실행력은 무한대가 됩니다. 극으로 가서 ‘죽음’을 택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얻고 내 업장을 녹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법을 실천하는게 이런거라면, 진짜 다 내걸고 계속 계속 하고 싶습니다. 그걸 실천하면서, 우리 엄마가 말했듯이, 행복하게, 재미있게 살고 싶습니다.
<강령>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시비를 모르거나, 욕심에 지거나, 습관에 끌려서 취사를 어려워 합니다. 그러나 결국, 실행이 없으면 아무리 도를 닦아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취사의 열매를 맺어야만 목적한바 즐겁게 생활하고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만큼 취사는 힘이 듭니다. 힘들 때 취사를 되게끔 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은 맹세 기도를 올리는 것입니다. 맹세 기도를 통해 '죽기로써'라는 치트키를 '허공법계'에 입력합니다. 그리 하므로써 극하면 변하고 죽어야 살아나는 변화의 진리를 실생활에 가져다가, 그 진리의 공식에 내 업장을 과감하게 넣고 녹여버릴 수 있고, 우리는 고를 버리고 낙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짐>
우리 다 같이 눈을 감고 떠올려볼까요? 모두 지금 실천하고 싶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한가지, 그 것을 떠올려봅시다. 그리고 다짐합시다: 나는 이 ‘죽기로써’라는 치트키를 쓰겠다! 죽기로써 취사를 해내겠다! 그리하여 나의 삶에 새로운 숨, 새로운 희망, 새로운 낙을 불어 넣자! 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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