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원기 108년 11월 15일 수요예회 (송세원 "이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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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은 모든 죄업 생각하오니 탐심 진심 어리석음 근본이되어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었던바라 내이제 모두 깊이깊이 참회합니다. 죄업이 자성에는 본래 없으나 마음따라 모든 죄가 일어났나니 그 마음 멸도되면 죄도 공한 것 모두 공한 그자리에 그치오리다."
이상은 성가 87장 내가 지은 모든죄업의 가사입니다.
대종사께서는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을 개척하는 초보, 악도를 놓고 선도에 들어오는 초문인 참회문을 내려주시고 그 방법으로 두 가지를 일러주셨습니다. 사참과 이참. 대종사님은 참회를 한다고 할 때에 이 두 가지 방법을 필히 병행해야 한다고 일러주셨는데, 저는 오늘 이참을 가지고 강연을 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은 잡초를 많이 뽑아보셨나요? 아마 청소시간이나 보은봉공 시간에 많이 뽑아 보셨을 겁니다. 그 잡초를 뽑을 때에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이죠?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뽑은 것을 다시 흙에다 두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잡초를 뿌리까지 뽑지 않거나 그 뽑은 것을 흙 위에다 두어 버리면 그 잡초는 또다시 흙속에 뿌리를 박고 무성하게 자랄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잡초를 뽑을 때엔 항상 그 근본, 뿌리를 다스려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대종사께서 참회문에 비슷한 예시로 말씀해 주신 것이 ‘뜨거운 물을 냉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고 냄비를 올리고 물을 담아놓으면 그 물은 곧 뜨거워집니다. 이 물을 다시 차갑게 만들려고 하면 불을 꺼야하겠죠. 우선적으로 불을 끄지 않고서는 절대 그 물이 차가워질 수 없습니다. 차가운 물을 아무리 넣는다 해도 그 물은 다시 뜨거워질 것입니다.
이 예시를 보면 대종사님은 우리에게 Fire fighter, 소방관이 될 것을 요구하고 계시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뜨거움의 근본이 되는 그 불을 꺼버려라 하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죄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 그 불을 끄고 뿌리를 뽑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이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어찌하여 이참이 죄의 그 근본을 다스리는 방법인가?
사참은 일 사(事)에 뉘우칠 참(懺) / 이참은 다스릴 이(理)에 뉘우칠 참(懺)입니다. 쉽게 말해 사참이 내가 저지른 모든 일들을 뉘우치고 올바른 행을 해가는 것이라 한다면 이참은 그 근본이 되는 이치, 곧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 뉘우치고 닦아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들은 모두 마음이 들어서 합니다. 모든 행의 근본이 마음인 것입니다. 선한 마음이 들어서 행동으로 옮기면 선한 행동이 되고, 악한 마음이 들어서 행동으로 옮기면 악한 행동이 됩니다. 뉴스를 보면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이 나옵니다. 음주운전, 마약투여, 흉기난동, 성폭행, 사기, 절도 등등 인간의 도리에서 벗어난 사건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죄’ 라고 하고, 죄를 저지른 사람을 죄인이라 합니다. 이 사람들의 죄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바로 마음에서 온 것입니다. 마음에 탐심과 진심과 치심이 가득하여 행동으로 옮겨지면 이런 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대종사님은 사람들이 죄를 자꾸 지어서 고해로 들어가는 이유를 밝혀주셨습니다. (왜 자꾸 고해로 들어가는가?) 그것은 시비이해를 몰라 자행자지 하거나, 설사 시비는 안다 할지라도 불같이 일어나는 이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습관에 끌리거나 하면 죄고로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하려는 탐심, 화내는 진심, 어리석은 치심 이 세 가지 독한 마음을 제어하지 못한 체 행동에 옮기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부끄러운 일을 하나 했습니다. 때는 저번 주 화요일, 아침 좌선을 끝내고 선요가를 하러 가야하는데 독경을 할 때부터 벌써 선요가가 하기 싫은 마음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다 ‘좌선을 하면서도 졸려 죽겠는데 어떻게 선요가를 해? 나는 오늘 선요가 못해’ 라는 생각에 완전히 지배당했습니다. 몸살피기가 끝나고 선요가 방송이 나올 때에 저는 조용히 본관 동편 계단실을 통해 4층 옥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구석에 걸레를 깔고 선요가시간 내내 쪼그려 앉아있었습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렇게 빼먹어도 ‘어? 아무도 모르네?’ 하는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 난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다 보고 있다는 것을 전연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죠.
청소를 하고 하루를 살면서 이 어리석고 그른 마음을 그대로 두면 이 마음으로 인해 앞으로 이보다 더한 짓도 하며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녁에 사감님께 가서 사실대로 고했습니다. 확실히 다 털어놓으니 마음이 편안해졌고, 일과를 잘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다시 솟구쳤습니다. 하지만 수요일 지나 목요일 아침 좌선이 끝날 무렵에 춥고 귀찮고 왜 하는지 모르겠고 피곤하고. 선요가를 하기 싫은 그 마음이 또 나는 것입니다.
이때가 이참을 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 탐진치를, 번뇌망상을 서둘러 제거하지 않으면 거기에 지배당하고 맙니다. 이 탐진치의 지배에서, 이 번뇌망상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스스로 또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참이라 함은 원래에 죄성이 공한 자리를 깨쳐 안으로 모든 번뇌망상을 제거해감을 이름이니,] 우리의 마음에서 올라오는 이 탐진치를 알아차리고 그 불을 꺼버릴 때, 뿌리를 뽑았을 때의 우리 마음 상태가 ‘죄성이 공한 상태’, 그 자리가 ‘죄성이 공한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죄의 근본이 되는 불도 없고 잡초도 없으니 텅 비었다고 하는 것이죠. 죄는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라 마음이 멸함에 따라 반드시 없어진다 하셨습니다. 그 탐진치의 마음이 사라지면 죄도 반드시 없어진다 하셨으니 우리는 그 탐진치의 마음과 그로부터 일어나는 번뇌망상을 제거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종사님은 안으로 모든 번뇌망상을 ‘제거함’ 이라 하시지 않고 ‘제거해감’ 이라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거함’이라 한 번 제거하면 끝이 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한번 없어진다고 다시 안나던가요? 저는 사감님께 찾아간 다음 일과를 잘 지키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지만 그 어리석은 마음이 다시 나왔습니다. 이러한 원리 때문에 대종사님은 ‘제거해감’이라고 해주셨습니다. 계속 나오니까 계속 뽑으라. 잡초가 올해 다 뽑으면 내년에 더 이상 안 나올까요? 해마다 나옵니다. 계속 뽑아야 합니다. 이 번뇌망상을 제거하는 공부를 계속해서 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대종사님은 우리들에게 죄를 다시 짓지 않는 방법을 내어주셨습니다. 오늘 저는 이참과 사참이라는 방법 중에 이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참은 모든 죄의 근본이 되는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요,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탐진치와 번뇌망상을 제거하는 공부입니다. 우리는 그 탐진치와 번뇌망상을 소방관이 불끄듯이 제거해야하고 잡초에 뿌리를 뽑듯이 다 뽑아버려야 하겠습니다. 마음의 속성이라는 것이 뽑아도 뽑아도 계속해서 번뇌망상이 나오기 마련이니 저희도 또한 계속해서 그 마음을 제거해가는 공부를 해야하겠습니다.
저희 모두가 죄의 근원이 되는 그 불을 잘 끄고, 그 잡초를 잘 뽑는 공부를 끝까지 하여서 죄는 짓지 아니하고 항상 떳떳한 생활을 하기를 기원합니다. 이상 강연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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