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설교) 원기 110년 9월 25일 목요예회 설교 (백종문_빌어먹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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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학생 |
| 작성일 | 25-09-25 2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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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2 목요예회 설교_백종문_빌어먹을.hwp (64.0K) 18회 다운로드 | DATE : 2025-09-25 20:28:19
본문
불공에는 자기 불공과 상대 불공이 있는 바, 이 두 가지가 쌍전하여야 하지마는 주종을 말하자면 자기 불공이 근본이 되나니, 각자의 마음 공부를 먼저 하는 것은 곧 불공하는 공식을 배우는 것이니라.
이상은 정산종사법어 권도편 13장 말씀입니다.
제 삶에 ‘빌어먹을’이라는 단어가 뼛속 깊이 사무쳤던 때가 있었습니다. 혈기왕성하던 시절, 형과 크게 다투고 의절 직전까지 갔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다 아버님께 하소연하니, 돌아온 답은 “네가 빌어서라도 다시 잘 지내보아라.” 였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왜? 억울한 건 나인데 왜 내가 빌어?’ 하지만 제가 또 아버지 말씀은 잘 듣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저는 한밤중 형의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무릎을 꿇고, 억지로 “내가 다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속으로 ‘빌어먹을...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하나?’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꾹 참고 억지로, 억지로 빌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 ‘빌어먹을’ 것 같던 행위가 끝나고 아침에 보니 얼음장 같던 형의 태도가 눈에 띄게 바뀌어 있더라구요. 그제서야 제 안에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든든함, 평화 같은 것들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날 알았습니다. ‘나 한번 내려놓고 상대에게 비는, 이 ‘빌어먹는 것’에 아주 대단한 힘이 있구나!’
우리는 불공을 한다면서, 사실 이 ‘비는 것’을 가장 자주 잊어버립니다. 대종사께서는 천지·부모·동포·법률에게 당한 죄복은 바로 그 사은 당처에 직접 빌어야 성공하는 불공법이라 밝혀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불공을 잘하는 것은 곧 잘 비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비는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만큼 했으니 복을 주십시오’ 하는 거래의 마음, ‘나는 노력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원망의 마음. 이것은 비는 것이 아니라 따지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누가 도와달라고 빌면서 “넌 내가 그때 도와줬는데 이것도 못 해주냐?” 라거나 “내가 이만큼 부탁했는데도 안 도와주냐 진짜 너무하다.” 라고 한다면 이걸 듣는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드실까요? 거래의 마음과 원망의 마음으로는 결코 불공을 성공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잘 빌어서’ 불공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다들 저를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잘 비우고! 잘 빌리자!
이것이 오늘 말씀드릴 잘 비는 비법입니다.
잘 비우고!
무엇을 비워야 할까요? 바로 ‘나’, ‘나의 아상’, ‘나의 아상으로 생기고 다시 나의 아상을 강화하는 분별성과 주착심’을 비워야 합니다. 우리는 불공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나를 중심에 두고 상대가 지녀야 할 태도를 분별하고는 합니다. 그래서 불공을 하면서 ‘내가 양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내어 상대에게도 그만큼의 양보를 바라게 됩니다. 이러한 아상에 기반한 생각이 올라올 때 그 생각을 내려놓고 또 내려놓아서 아상을 비우기에 노력해야 합니다.
이 ‘비우는 공부’가 선행되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불공은 아상 위에서 행하는 거래가 되고 맙니다.
다음으로, 잘 빌리자!
무엇을 빌려와야할까요? 사은 당처에서 빌려오는 것이니 당연히 사은의 위력이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큰 난관에 봉착합니다. 내가 당한 죄복이 지금 천지 부모 동포 법률 어디에서 당한 죄복인지를 명확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떤 위력을 빌려야 할지 몰라 헛다리를 집게 됩니다, 마치 제가 여기서 물을 쏟았는데 뜬금 없이 앞에 계신 분께 펜을 빌려달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입니다, 하지만 제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물을 닦을 수건이겠죠? 그래서 우리는 내가 지금 어떤 은혜에 당해 죄복을 구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사실적인 위력과 그 인과의 이치를 연구하여 내가 지금 당한 죄복이 무엇이고 어떤 위력을 빌려와야 할지 연구해야 합니다.
가령, 경제적으로 곤궁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힘들다면, 사농공상이 서로 돕고 의지하여 살아가는 동포은의 '자리이타 상생의 위력'을 빌리기에 힘써야 하고 마음이 혼란하고 삶의 질서가 무너져 불안하다면, 성현들이 바른 길을 열어주시고 법이 있어 개인 가정 사회 국가를 보호해주는 법률은의 '인도정의 구현의 위력'을 빌려와야 합니다.
이렇게 사사건건 내가 지금 당한 죄복이 무엇인고 어떤 위력을 빌려와야 할지 연구하여 천지가 만물을 아무 사심 없이 길러내는 공정한 위력, 부모가 자식을 위해 무한히 희생하는 사랑의 위력, 동포가 서로 자리이타로 돕는 상생의 위력, 법률이 정의를 세워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위력과 그 인과의 이치를 깊이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적재적소의 상황에 빌려올 바를 명확히 알고 빌려올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나서는 어떻게 빌려와야 할까요?
정전 천지 보은의 결과를 보면 우리가 천지의 도를 체받아 행하면 천지같은 위력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보은의 조목들을 삶 속에서 하나하나 실행하는 것이 바로 사은의 위력을 내 삶으로 직접 빌려오는 사실적인 ‘비는’ 행위입니다!
여러분, ‘잘 비는 법’의 길이 보이십니까?
나를 비우고, 사은의 위력을 알고, 보은행으로 그 위력을 실천하는 것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이 ‘비우고, 알고, 실천함’이 바로 우리가 늘 실천해온 마음공부, 바로 수양 연구 취사의 삼학 공부이며, 정산종사께서 말씀하신 ‘불공의 공식’입니다.
대산종사께서는 “오직 불공만이 진리의 대운을 다 빌어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앞으로도 수많은 ‘빌어먹을’ 싶은 경계들이 닥쳐올 것입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억울하며, 원망스러운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아, 지금이 바로 불공할 때로구나. 지금이야말로 나를 비우고 사은의 위력을 빌어올 절호의 기회로구나!’하고 생각해봅시다.
그리하여 ‘빌어먹을’이라는 원망의 마음을, ‘내가 사은의 위력을 빌어먹는 중이지!’하는 감사와 환희의 마음으로 돌립시다.
우리 모두 삼학 공부로써 잘 비는 공부인이 되어, 모든 경계를 성공하는 불공으로 만들고, 이 회상과 온 세상에 큰 복락을 가져오는 진정한 불공인이 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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