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기 109년 9월 19일 설교_고서연(수신의 요법 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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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분)별보러 가지 않을래?
109_0919 목요예회 설교
반갑습니다. 먼저 법문 봉독해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시기를 [가리어서 끌리고 끌려서 그르고 글러서 죄가 되나니, 어리석은 이는 자기 생각 하나 뿐이라 자기란 것에 가리어서 모든 작용이 글러지나 그도 타인을 비판하는 데에는 걸림이 없으므로 밝나니, 그 밝음을 돌려다가 자기 허물 고치는 데 이용하면 대지와 대복을 얻으리라.]”
이상은 정산종사법어 제5원리편 26장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젓가락) 별을 좋아하시나요? 요즘 새벽에 대각전에 갈 때면 하늘에 별이 참 많이 보입니다. 별자리도 보이죠. 아마 여기 계신 분들 중 별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저에게도 별이 있다는 것인데요, 혹시 그 별이 보이시나요? 안보이신다고요?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여러분도 다 별을 갖고 있습니다. 그 별은 바로 (젓가락) 분별입니다. 오늘은 저와 함께 분별을 보러 가보겠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내가 하고 싶은 분별에 끌려 시비이해를 나누는 것과, 내가 해야하는 분별을 하여 시비이해를 나누는 것의 차이점을 주제로 함께 공부해볼까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수신의 요법 3조 일과 이치를 연구하여 시비와 이해를 분석하며 바르게 판단할 것이요‘입니다. 수신의 요법은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행하는 요긴한 방법입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사리를 연구한 뒤 시비이해를 분석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린 시비이해라는 말을 참 많이 합니다. 옳고, 그르고, 이롭고, 해로운 것. 이와 더불어 시비 분별이라고도 말합니다. 뭐가 옳고 뭐가 그르냐?에 대한 분석을 바르게 해야한다는 것이죠.
우린 모두 학교에서 여러 가지 일과 공부를 합니다. 함께 일하고 공부하다 보면 ’이게 옳은 것 같은데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싶습니다. 다들 이런 생각 많이 하시죠? 저만 그런가요? 이곳엔 분별이 너무 많아 스트레스 받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그럼 우린 평소에 어떤 분별을 하고 있길래 스트레스를 받는 것일까요? 제 모습을 돌아보니 내가 하고싶은 분별만 하고 있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일과 이치를 보면서 정말 필요하고 해야하는 분별을 해야 하는데 습관과 업력에 끌려서 하고 싶은 분별만 하다보니 일도 잘 안되고, 스스로가 삼계화택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젓가락) 때는 바야흐로 제가 미주연수를 하는 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 곳곳을 다닐 때 전 주로 응준교무님께서 운전하시는 차를 탔습니다. 그때마다 차에서 잠을 잘 못자는 저를 위해 교무님께서는 교무님의 라이프 스토리를 많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 당시 제 머릿속에는 (젓가락) ‘신문사 일 진짜 하기 싫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학기 내내 그 일로 스트레스 받기도 했고, 다음 학기에도 일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교무님의 공심 가득한 스토리를 들으며 분별이 탁! 멈추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가 저를 보았을 때 ‘내가 왜 이런 분별을 하고 있나?’ 싶었습니다. ‘별 것 아닌 것에 내가 끌려가고 있구나.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에 대한 분석이 순식간에 되었습니다. 그렇게 분석을 끝내고 전 바로 시차도 안맞는데 그때 당시 기관 담당 교무님이셨던 인타원님께 장문의 글을 보내며 다시 신문사 일을 해보겠다고 카톡을 보냅니다. 그렇게 판단하고 취사하니 그 뒤론 마음에 불편한 것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때의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제가 그동안 하고싶은 분별에만 끌려 내가 옳다는 상에 갇혀있음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내가 하고싶은 분별대신 해야하는 분별을 하면 시비이해가 명확하게 분석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내가 하고싶은 분별이 아닌 해야하는 분별을 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로는 내가 어떠한 분별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공부, 집심 공부입니다. 우리가 좌선을 할 때 번뇌 망상이 올라오면 대종사님께선 어떻게 하라고 하셨죠? 망념인 줄 알아차리면 망념이 스스로 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분별이란 것도 망념과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돌아갔습니다. 내가 막 분별을 하다가도 ‘아, 나 지금 분별에 끌려간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한 템포 쉬어갈 수 있습니다. 분별에 끌려가는 순간 내가 하고 싶은 시비분별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분별하고 나면 남는건 무엇일까요? 제 경험을 비춰보았을 땐 결국 마지막엔 원망심만 남아있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내가 하는 시비분별이 과연 필요한 것일까? 그 필요성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내가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라고 혼자 머리를 뜨겁게 하면서 시비 분별을 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누굴 위한 시비분별인지도 모른 채 그냥 경계에 끌려서 머리를 끓입니다. 그때 멈춰서 내가 하는 분별이 정말 필요한 분별인지? 사리연구를 통해 연구력을 얻을 수 있는 분별인지? 시비이해를 분별하며 취사의 능력을 얻을 수 있는 분별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늘 온생취를 입에 달고 삽니다. 그런데 무엇을 온전하게 해야하는 것이죠? 정신입니다. ‘온전한 정신으로’ 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그 정신은 어디에서 나타나는 것입니까? 정산종사법어 제5원리편 12장에서는 성품에서 정신이 나타나고 정신에서 분별이 나타날 때가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착각은 분별 그 자체만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는 공부하며 느꼈습니다. 살아있다면 분별이 올라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품이 있는 사람에게 분별이 나타나는 것 또한 당연한 것입니다.
분별성은 분별에서 더 나아가 희로애락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게 더 반복되어서 마음에 붙잡고 있으면 주착심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분별만 하면 반드시 거기에 매해집니다.
정리해보자면 내가 하고 싶은 분별이 아닌 해야하는 분별을 하기 위해선 첫 번째 내가 분별하는 중임을 알아차리는 공부, 두 번째 내가 하고 싶은 분별인지, 꼭 필요한 분별인지 생각해보는 공부. 이 두 가지 공부를 반드시 해서 사리간에 명확한 분석을 얻어야 합니다.
저는 지난 학기 참 많은 분별 집착 속에 살았습니다. 분별로 힘들었던 한 학기를 살고 난 뒤에 마음을 다시 고쳐먹고 분별을 하지 말아보자! 내가 하고 싶은 분별에 끌릴 것이 아니라 꼭 해야 하는 분별을 하자!는 생각으로 한 학기 목표를 잡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연습하다보니 스스로가 정신적으로도 육신적으로도 편해지는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저와 함께 수신의 요법 3조 공부를 했으니 반드시 시비이해를 잘 분석해서 바르게 판단하실 수 있을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해내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상으로 설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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