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원기 110년 9월 4일 목요예회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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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학생 |
| 작성일 | 25-09-04 1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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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길래 질래
[전제]
대종사께서는 누구나 쉽게 새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 정기 훈련과 상시 훈련을 밝혀 주셨나니, 우리는 정기 훈련을 잘해야 상시 훈련에 도움이 되고 상시 훈련을 잘해야 정기 훈련에 도움이 되는 이치를 알아서 이 두 훈련을 함께 병진해 나가야 할 것이니라. 대산종사 법어 훈련편 28장 법문입니다.
[예화]
학교에서 5월 말이나 11월 말이 되면 “오늘 상시까지 몇일 남았다! 괜찮아 곧 끝나”라는 말을 자주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제식을 함과 동시에 보상심리의 마음으로 “상신데, 이 정도는 괜찮아”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경계에 끌려가곤 합니다. (이길래 질래 이길래 질래 애매하긴 하죠?)
그때부터는 하루 정도는 좌선을 챙기지 못해도, 일기 작성이 안 되어도 상시 기간이니까라는 이유를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못 해봤던 거, 하고 싶었던 거, 먹고 싶던 걸 먹으면서 보내다가 아쉬운 채로 입사를 하게 됩니다. 그럼 규칙적이고 어쩌면 부자유함을 느끼며 답답한 정기기간을 보냅니다. 이건 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아마 여기 계신 학생들도 크게 공감이 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전개]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왜 정기 훈련이 힘듦에도 나가지 않고 공부하려고 들어왔나요? 무엇 때문에 다시 들어와 공부하나요? 왜냐하면 정기 훈련과 상시 훈련이 나를 새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새 사람은, 얼굴이 바뀌고 성별과 같은 외형적인 변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성형외과에 가면 바꿀 수야 있지만 여기는 마음병원이기에 마음을 새 마음으로 바꾸어 줍니다. 바꾸어준다는 건 예전 습관에 끌려다니지 않고, 과거의 나에서 진급된 내면의 성장을 말합니다.
그 성장이 정기 훈련과 상시 훈련의 쉬지 않는 공부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과거 수도인은 조용한 곳에서만 도를 닦아왔습니다. 경계가 없는 곳에서 마음을 닦으니 흔들릴 요소도 없고, 올바르게 공부를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하지만 막상 경계에 당하고 보면 오히려 세속의 사람들보다 더 빨리 더 강하게 흔들립니다. 왜냐하면 그 경계를 처음 맞아보기도 하고, 경계 속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경계가 없는 장소로 들어가 몸과 마음은 편안하게만 어찌 보면 일생을 정기훈련으로만 보내어서 부처의 길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대종사님께서는 쉬지 않는 공부를 하기 위해 정기 훈련과 상시 훈련을 말씀하셨고 두 훈련이 일 분 일각도 공부를 떠나지 않아 서로 도움이 되고 연결이 됩니다. 왜 그러냐면
정기훈련은 대체적으로 1년에 2번 정도 진행이 됩니다. 그 기간에만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끝이 아니라, 남은 기간에 공부한 걸 가지고 생활에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무기를 획득했다면 무기를 활용하는 싸움장에 가라는 말입니다.
싸움장에서 습관과 욕심에 끌려 행동할 것이 아니라 무기를 가지고 나를 이겨보자는 것입니다. 어쩌면 저희는 대종사님 법을 만나기 전에 매번 지며 살아왔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종사님께서는 저희에게 무기를 쥐어주셨고, 그 무기를 활용할 줄 아는 공부인이 되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나를 이겨나가는 과정이 당연히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정기훈련에 입선한 것처럼 이 법이 새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공부한다면 그 한걸음이 결국 나를 이기고, 부처가 되는 한 걸음일 수 있습니다. (이길래 질래 이길래 질래 애매하긴 해)
그래서 정기 훈련을 임하는 자세를 어떻게 가져야 하냐. 상시 기간동안 경계에 흔들리지 않고, 실지에 활용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고 있는거야. 하고 마음을 먹으면 지금 불편하고 부자유하다는 생각이 조금은 놓아지게 될 것입니다.
상시 기간도 정기 때보다는 여유 있게 심신을 회복하지만, 이 기간이 나의 공부 정도를 여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 보게 되면, 오히려 상시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수행품 62장에서 해제식은 작은 선원에는 해제를 하는 것이지만 큰 선원에는 다시 결제를 한다는 법문처럼 서로가 서로의 바탕이 되고 자료가 되어 새 사람이 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두 훈련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면 어떤 현상이 나올까요?
두 훈련의 연속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정기 따로 상시 따로가 되어서 한 공부의 흐름으로 흘러가지 않고, on, off가 확실한 기간이 됩니다.
정기기간을 성적 잘 받고 버텨내는 기간으로만 여기며 여기에서만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 상시 때는 마음이 더 풀어집니다. 상시기간도 이때 아니면 못 놀아 하고 온갖 경계들 속에서 그동안 잘 참았으니까하는 보상심리로 술 담배 이성 욕심에 끌려 다닙니다.
이 마음이 하루 한 학기 1년 정도에서 중요성을 알게 된다면 괜찮지만, 알지 못한 채 계속 이어간다면 결국 일생을 허비하게 되고 허망한 사람이 됩니다. 과거 수도인이 경계 없는 산속에서 공부한 것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대종사님의 법을 실현하지 않았기에 허송한 생활을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훈련편 28장에서 이 공부를 철저히 하여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새 사람이 되도록 쉬지 않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상시에 배움을 놓아버리고 놀기에 바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공가에 있는 날보다 여행이나 콘서트에 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1년, 2년 살다 보니까 상시와 정기가 정확하게 구분되어 출퇴근하는 회사원 같았습니다. 그래서 정기와 상시 훈련이 하나의 훈련으로 생활하기 위해 공가에 있는 비중을 늘렸고 정기 때의 공부심을 놓지 않고 상시 때까지 이어갔습니다.
그중 하나가 청소인데요. 저는 귀엽고 예쁜 소품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 자리는 무언가로 꽉 차 있고, 정리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리를 한다고 했지만 지금 보면 그냥 일렬 정리였습니다. 온전한 마음은 양성하는데, 온전한 몸이 양성되지 않고 있어서 매달 원외 법회를 다녀오고 나서 꼭 제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계속 비워내는 공부를 하게 되었고, 상시때에 집에 가면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 자리를 보면 깔끔하고, 집에 가서도 정리를 하고 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대종사님께서는 새 사람이 되기 위해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을 밝혀주셨고 그 둘은 서로 도움이 되고 바탕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기기간을 버티는 기간이 아닌 무기를 제작하는 기간으로 상시기간은 과거처럼 행동하는 기간이 아닌 무기를 활용하는 기간으로 보아야 결국 나를 이기고 부처가 되는 한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둘의 연속성을 알지 못하면 일생을 허비하고 결국 허망한 사람이 되기에 참회와 쉼 없는 공부를 해 나가자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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