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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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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선학대학교의 법회·문답입니다.

제목 [ 110년 09월 04일 목요예회 설교 ] 눈 떠보니, 재벌집 막내
작성자 우명은
작성일 25-09-04 20:02

본문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견성이라 하는 것은 비하건대 거부 장자가 자기의 재산을 자기의 재산으로 알지 못하고 지내다가 비로소 알게 된 것과 같고, 솔성이라 하는 것은 이미 자기의 소유인 것을 알았으나 전일에 잃어버리고 지내는 동안 모두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바 되었는지라 여러모로 주선하여 그 잃었던 권리를 회복함과 같나니라.]

이상 대종경 제7 성리품 8장 일부 말씀입니다.


 재벌집 막내 아들 드라마 보셨나요? 공부하느라 드라마 볼 시간이 없으셨죠..
간단히 설명하면 눈 떠보니 진짜 재벌집 막내 아들이 되어서 미래의 일을 미리 알고 복수도하고 부자도 되는 한 청년이였던 이야기입니다. 
눈 떠보니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된다니 너무 부럽습니다. 솔직히 진짜 저런 일이 있다면!!! 저에게도 저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대종사께서 저희들에게 재벌집 막내 아들 버금가는 큰 재산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실제 돈은 아니지만 대단히 많은 재산이 있는 나를 알아가며, 나도 또한 거부 장자 였음을 알게된 작은 깨달음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대산종사법문집 제 3집에 “성리는 꾸어서라도 보아야”라는 제목의 법문이 있습니다. 

꾸다 혹은 빌리다의 사전적 해석으로는 남의 도움을 받거나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믿고 기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신이라 함은 믿음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이니라. 진행 사조 중 신에 대한 법문 말씀입니다. 
 성인의 말씀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은 무조건 적인 “믿음” 그리고 “의지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마음을 세우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신뢰감 없는 상태에서 무엇인가 지도를 받았을 때, 일호의 의심이 있는 상태라면 얼마나 그 뜻을 빌려 쓸 수 있을까요? 정전 교의편 일원상의 신앙에서는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진리가 그렇다고 한다는데 왜 그러는가?하는 물음도 믿음에 바탕한 물음표가 되어야 합니다.
 학교에 들어와 살면서 제일 많이 공을 들인 것이 걷는것이였습니다. 전에 계셨던 교무님 옆을 잠깐 스쳐 지나가는 중이였습니다. 그런데 교무님께서 지나가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걸을 때, 마음이 어디에 있어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들은 후에 걸으면서 잠깐 진짜 마음이 어디에 있지? 발에 있어? 머리에 있어? 하면서 갑자기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당시 교무님의 말씀은 지금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화두가 여전히 저희 걸음을 따라서 함께 걷고 있습니다. 걸을 때마다 계속 그 질문을 생각하는 이유는 [지도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찾고자 하는 굳은 의지]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스승님의 말씀이 현재 나의 근기에 맞지 않더라도 화두를 걸어 보는 것도,,,믿음이며, 하나씩 아는 만큼 흡수하고 나에게 대입하는 것도 믿음에서 바탕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빌려온 성리가 사실 나에게도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철은 용광로를 거쳐야 정철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나라는 철을 용광로라는 대종사님 정법에 온전히 맡겨야 정철로 거듭납니다. 
잊지 않고 이 법에 온전히 나를 맡겨 보는 것이 제가 성리를 연마하기 시작한 첫 걸음이였습니다. 


저희들에게는 매일 성리를 연마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바로 일기 작성입니다. 
그 중에 심신작용처리건은 성리공부와 아주 밀접합니다. 저는 심신작용처리건을 쓸 때! 왜 써도 써도 나아지는 것 같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쓰면 쓸수록 취사력은 좋아져야 하는데 그저 제자리 걸음을 한다고 느끼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간 주로 써왔던 일기의 형식이 심신작용건에서 끝나고 처리건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취사력이 좋아지지 않는 이유였어요. 작용을 보았다는 것은 그 만큼 나를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제는 알았으니 나를 수정해 가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처리을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연마입니다. 심신작용처리건을 통해 취사력을 올리는 공부입니다. 처리건을 만들기 위한 연마가 끝나면 이제는 어떻게 처리를 하는가 살펴봐야 합니다. 한번 내가 주로 쓰는 일기의 형식은 어떠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단순히 상대에게 좋은 일을 했다고 해서 성리를 부려 썼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삼대력을 갖다 쓴다는 것은 분명히 그 자리를 알아서 본 다음에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수도하는 사람이 견성을 하려는 것은 성품의 본래 자리를 알아, 그와 같이 결함 없게 심신을 사용하여 원만한 부처를 이루는 데에 그 목적이 있나니...
이상 제7 성리품 7장 일부 말씀입니다.

대종사께서는 “견성을 하려는 것은 성품의 본래 자리를 알아서 심신을 사용하여 부처를 이루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경계를 당하면 성품의 본래 자리를 알아서 심신을 사용하자는 것인데. 누가 주재하는지 모른 체로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한다면 아무리 좋은 취사라 하더라도 부지중 나오는 착한 행동은 되더라도 진공에 자리를 보고 나온 것이라 단정 지을 수 없어요. 그간 주로 해왔던 생각을 업의 흐름을 경계하고 자성을 비춰보는 연습을 수시로 하면 진짜 경계를 당하면 필요한 경우에 사용하는 날이 옵니다. 그렇게 체득해 가야 합니다. 심신작용을 일기에 기재하면서 몸과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고 사용할 것인지 대비를 하게 해주는데, 그 대비가 전에 이루어지면 요란한 경계를 당하여도 심지를 바르게 돌리는 힘이 됩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먼저 일이 없을 때 혹은 동하지 않을 때 단전주를 하면서 그 자리를 찾고 찾으면 진짜 필요할 때 툭!! 나오게 됩니다. 나중에 일 당해서 찾으면 자성반조, 자성회복이 더뎌집니다. 때문에 육근이 무사할때가 공부 하기 좋은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정할때는 동할때 자료를 준비합시다. 


대종사님 따라 온 이 공부 이 사업이 모두 즐거운 한편 많이 애쓰고 계실 것이라 짐작합니다. 저의 마음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대종사님의 말씀에 얼마나 많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되돌아 보고, 오직 믿음으로 화두를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화두는 의심이며, 의심은 사견에 빠집니다. 

그리고 대종사님께 빌린 성리를 실제 나의 생활에 활용하여 나에게도 있음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벌집 막내 아들이라는 이 드라마의 결말 혹시 아세요?결말로 인해 많은 대중의 욕을 먹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눈 떠보니 꿈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드라마의 결말이 열려있다고 봅니다. 눈 떠보니 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혹여나 꿈이라도 그 꿈을 경험하고 나온 주인공은 현실에서 그 일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맛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저희 공부인들도 “내가 사실 거부 장자”임을 확인할 때까지 오직 신심으로 대종사님 말씀 받들어 가길 기원하며, 일원의 진리를 체험해 가는 공부인 우리 모두 되어 봅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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