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설교) 원기 110년 9월 18일 목요예회 설교 (탁혜성_질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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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탁혜성 |
| 작성일 | 25-09-18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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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강약의 대지를 들어 말하면 무슨 일을 물론하고 이기는 것은 강이요 지는 것은 약이라 강자는 약자로 인하여 강의 목적을 달하고 약자는 강자로 인하여 강을 얻는 고로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바탕하여 친 불친이 있나니라.
이상은 정전 제3 수행편 제13장 최초법어 중 강자약자 진화상의 요법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질문을 하며 보내셨나요?
우리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대종경에는 아주 친숙한 문구가 있습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리고 ‘한 제자가 여쭙기를’. 그 중 <여쭙기를> 이라는 문구는 무려 106번이나 반복됩니다.
이렇게 배움을 얻기 위해서 제자인 우리들은 질문을 합니다.
왜나하면 우리는 아직까지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빵을 반죽하던 작업대 위에는 원기 103년 경산상사님께서 종법사시절에 내려주신 신년 법문 말씀 <내가 나를 이기자> 라고 적힌 법문 액자가 있었습니다.
좌선 시간 수마에 이끌려 혼수 상태로 졸다가
단장님이 계속해서 깨웁니다. 그런데요 이게 반복이 되면 슬슬 짜증이 납니다. ‘네가 뭔데 자꾸 이래라 저래라야? ’
아직 예비 특신급인 저나 혹은 여기 있는 분들 중에는, 마에 이끌려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하루하루 약자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특히 의심이 생기면 혼자 그 의심을 마구마구 키우다가 곪아 터져서야 문답을 드리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런 저의 모습에 스스로가 약자라고 느꼈던 하나의 기억이 있습니다.
작년에 간사 생활을 하기 전까지 저는 3개의 프렌차이즈 빵집을 운영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대형 상권에 위치한 高 매출의 매장이었고, 그 중 또 하나는 작은 상권에 위치한 비교적 매출이 낮은 소형매장이었습니다. 어쩌다 사장님들 모임에 가면, 참 재밌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작은 상권에 위치한 사장님들은 늘 “내 돈 내고 내가 장사하는데, 본사에서 왜 이렇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투덜댑니다. 한편 대형 상권에 있는 사장님들은 어떨까요? 신제품 판매 전략, 본사 정책 분석, 본사 매뉴얼을 각 매장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 공유하고 본사에 질문합니다.
본사는 앞선 경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뉴얼을 만들어 가맹점에 제공합니다. 가맹점 사장님들은 그러한 도움을 받아 매출을 높여갑니다. 이런 매장들은 한국을 넘어 미국 중국 베트남에도 생겨납니다. 본사와 가맹점이 서로 의지하고 바탕하여 함께 진급하는 것입니다. 高 매출 매장의 사장님들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더 능동적으로 본사의 정책을 분석하고 질문합니다. 똑똑하죠?
자, 어떤가요?
마음 공부를 통해 스스로를 경영하는 여러분은 투덜이 사장님인가요? 아니면 똑똑이 사장님인가요?
대종사님께서는 강약의 대지를 설명하시며
<약자는 강자로 인하여 강을 얻는 고로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바탕하여 친 불친이 있나니라.> 하셨는데,
솔직히 저는 투덜이였던 적이 많았습니다. 주변에 앞서 경험하신 강자. 교무님들이 계시는데 혼자 의심하고 단정 지음으로써 스스로 불친의 길로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질문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길로 낮에는 광제 교무님께, 저녁에는 인타원님께 문답을 드리고, 속으로 생각해왔던 의심들을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이 원래의 자리를 되찾게 되었고, 의심도 모두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도대체 질문이라는 것이 뭐길래 내 마음 속 의심이 풀리는 걸까요?
질문의 한자를 보면 ‘바탕 질(質)’ 자에 ‘물을 문(問)’자를 씁니다. 바탕 즉, 본질을 묻는 것이 바로 질문이라는 겁니다.
가령 교당에서 법회를 보기 전에, 성가를 부르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아이들이 와서 물어요. “그거 왜 하는 거에요?”
이런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어?’하고 멈추어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에 제가 이런 상황에 임하게 되었다면 이렇게 답하겠죠.
자, 우리 어린이 부처님~
법회 전에 마음을 모으고, 법회의 내용을 미리 마음에 새겨보는 거에요~
만화를 볼 때 먼저 주제가를 부른 뒤에 보면 재미있죠?
그것처럼 이렇게 성가를 부르고 교무님 이야기를 들으면 진짜 재미있답니다!
질문에 답을 얻은 어린이들은 설교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신입 교도님이나 어린이 부처님이 많을 때에는 앞서 했던 멘트를 해 볼 수도 있겠죠?
이처럼 어떤 질문들은, 그 본질을 명확히 알게 함으로써,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켜 줍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약자는 강자를 선도자로 삼고 어떠한 천신만고가 있다 하여도,
약자의 자리에서 강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진보하여 가는 것이 다시 없는 강자가 되는 길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약자인 우리가 스승님께 문답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변화>는 우리의 서원을 더 간절하게 하고, 천신만고를 감내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줍니다.
좌산상사님께서는 학생시절, 틈만 나면 정산종사님께 궁금한 것을 여쭈어보셨다고 합니다. 책 한 권을 읽기 전에도 영화 한 편을 보기 전에도 여쭈어서, ‘그래 보아도 좋다’ 하시면 보셨다고 해요. 좌선에 관한 의문 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공부하고 의문 나는 것들 또는 생활 습관까지, 모든 것들을 전부 질문하셨다고 합니다.
저 역시도 교무님들과 문답을 하면서 가장 크게 <변화>된 부분이 있는데요,
교무님들께서는 언제나 저의 약한 부분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알려주셨고, 항상 대의를 놓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질문하고 답을 듣는 과정을 통해 저는 공익심을 기반으로 수양 연구 취사할 수 있는, 그 기준을 제 안에 꽝 찍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질문은 약자를 강자로 비상하게 하는 날개입니다.
질문이라는 날개짓을 통해 우리는 더 강하고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먼저 이 길을 걸으신 강자, 스승님께 질문하고 답을 구할 때, 우리는 변화할 것이고, 그리하여 차차 법이 내 안의 마를 이기는 순간이 많아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질문이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어떤 질문을 하실 건가요?
바로 그 질문들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 시킬 날개가 되어 줄 것입니다.
모두 함께 이 공부 이 사업을 성공시킬 튼튼한 날개를 장만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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