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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문답

(설교) 원기 109년 3월 21일 목요예회 송세원 설교 ('꽃길만 걷게 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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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세원
댓글 0건 조회 509회 작성일 24-03-3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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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꽃길만 걷게 해줄게

"무슨 일이든지 잘못된 일이 있고 보면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를 살필 것이요," 

이상은 정전 제 3 수행품 제 12 솔성요론 中 9조의 말씀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외식을 갔던 날입니다. 차를 타고 식당을 갔는데 그 식당이 높은 곳에 있어서 입구가 많이 경사지고 좁은데다 구불구불해서 상당히 위태롭게 올라갔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길이 참 험하네" 험한 길, 만약에, 여러분들은 그 식당을 갈 때에 험하고 불편한 길과 안전하고 평탄한 길 이렇게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면 어떠한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밥 한번 먹으러 가는데 목숨을 거는 스릴을 즐기는 분이 아니라면 아마 평탄한 길, 안전한 길을 택하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혹시 사람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사람 사이에도 평탄하고 편안한 길이 있는가 하면 불편하고 험해서 가기 싫은 길이 사람 사이에도 이어져 있습니다. 그 길이 무엇일까, 그리고 길이 험한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애 대해  설교의 주제 법문을 가지고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잘못된 일이 있고보면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를 살필 것이요.] 

대종사님은 무슨 일이든지 잘못된 일이 있고보면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를 살피라고 하셨습니다. 잘못된 일이라 하면 보통 그 일이 의도한 바와 다르게 흘러갔을 때에 그것을 잘못된 일이라 합니다. '의도'란?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계획' 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는데, 한자로는 뜻 의(意)에 그림 도(圖) 입니다. '이렇게해서 저렇게 하면 되겠다' 하는 그 뜻이나 생각, 계획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일을 진행할 때에 미리 그려놓은 그 그림과는 다르게 일이 흘러가버리면 어떤가요? 마음이 요란해집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그림을 그리면 연필로 스캐치는 나쁘지 않게 해놓고 꼭 붓으로 색칠만 하면 다 망치곤 했습니다.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 그 순간부터 심술이 납니다. 그러면서 원망하는 마음이 납니다. 


원망하는 마음, '원망'의 사전적 의미는 '못마땅하게 여기어 탓하거나 불평을 품고 미워하다.' 입니다. 내가 의도한 바에 마땅하지 않다, 못 미친다, 그래서 탓하거나 불평을 품고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근데 그것이 탓하고 불평하고 미워하는 대상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대게 그 대상이 밖에 있습니다. '아, 이 붓이 별로네, 물감이 별로네,' 이 미워하는 대상이 밖으로 향해있고 그것을 핑계삼는다는 것입니다. 웃긴 일이죠. 그림은 제 손이 그리는데 원망은 붓에다가 합니다. 


대종사님은 남을 원망하지 말고 자기를 살피라 하셨습니다. 밖으로 향한 그 마음을 안으로 돌리라는 말씀입니다. '아, 내가 그림에 소질이 없구나, 내가 부족한 것이었구나' 하면 그 잘못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그 마음을 나에게로 돌린 것이 됩니다. 근데 그 마음을 안으로 돌린다 해서 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불평하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원망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언제 가장 원망을 많이 하는가 살펴보면 보통 보은봉공 할 때입니다. 시간 내에 작업을 빠르게 마무리 해야하는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일을 답답하게 하거나 잘 안하면 속으로 마구 탓하고 원망합니다. 원망하는 줄도 모르게 합니다. 근데 원망을많이 해서 보은봉공 일이 잘 되고 일찍 끝나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원망을 하고 있는 나는 정말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은봉공 작업이 다 끝나면 괜히 무안해집니다. 대면대면해지고 왜그랬을까 후회가 됩니다. 속으로 원망을 혼자 했는데도 그렇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가 가장 크게 의도하는 바는 무엇이죠? 대종사님 의도와 같습니다.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함, 그리고 전무출신으로 살면서 세상에 유익이 되는 일을 하고자, 도움이 되는 이가 되고자 우리는 이곳에 와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의도를 가지고 사는 중입니다. 근데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그 의도가 일종의 잣대가 되어서 그 잣대로 남을 판단하고 평가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의도와 맞지 않게 일이 흘러가거나 혹은 의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이들을 보면 나를 살피기 전에 그들을 원망합니다. 


그렇게 평가하고 판단하면서 원망심을 낸다고 했을 때 그 원망하는 것이 제생의세하는 사업에 도움이된다고 한다면 대종사님이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라 하셨을 리가 없죠. 스승님들 말씀 중에도 원망은 풀기에 노력하라고 하셨지 원망을 하라는 말씀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원망을 하면 나아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이 악화되거나 퇴보하면 더 퇴보했지, 개선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원망은 멈춰야 하고, 녹여내야 합니다. 원망은 모든 난리의 근본이 되고 모든 재앙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리고 주변에 해독을 끼치면서 스스로를 고독하게 만듭니다. 


제가 서론에서 사람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길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원망을 하는 순간 나와 상대를 이어주는 그 길을 험하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나한테 찾아오는 그 길을 훼손시키는 것, 그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 장애물을 놓는 것과 같습니다.찾아오는 상대가 불편하도록 말이죠. 그럼 언젠가는 스스로 고립되고 맙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게되고 쓸쓸해집니다. 


대종사께서 원망을 하지 말고 자기를 살피라고 하신 뜻을 비유해보자면 그 길을 잘 닦자는 의미로 비유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길을 잘 닦아서 상대방이 찾아올 때에 평탄하고 안전한 느낌을 얻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길을 잘 닦는 방법이 무엇일까? 간략한 행동강령 2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행동 살피기, 둘째는 마음 살피기입니다. 

첫째, 내 행동 살피기는 잘못된 일을 당했을 때, 나는 그러한 잘못을 한 적이 없는가, 그러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한 잘못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둘째, 나의 마음이 어떠한가 살피기. 혹여나 내 마음이 요란하다면,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이를 멈추는 것. 일단 멈추는 것입니다. 왜냐, 요란한 마음으로 원망을 하면 나아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죠. 또는 내가 의도하는 바 그것에 과히 집착되어있다는 생각이 들면 이를 또한 공부의 기회로 삼고 멈추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그곳에 착되어 있으면 두루 살피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상과 같이 길을 잘 닦았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꽃을 심어야죠. 찾아오는 이가 편안한 마음이 들 수 있게. 꽃을 심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 가지기 입니다. 잘못된 일을 당했을 때에 '이정도만 해도 감사하다,' 하면서 해독 속에서 감사를 찾는 것이죠. 이것이 곧 그 길에 꽃을 심는 행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길이 있습니다. 큰 길인데, 이 길이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있습니다. 바로 남북 사이의 길인데요,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고 원망하고 미워한 세월이 너무 짙어지다 보니 지금은 그 길이 완전히 지뢰밭길이 되어버렸습니다. 세계의 평화와 안락을 기원하는 우리는 그 훼손된 길을 잘 알아서 잘 닦고 꽃을 많이 심기 위해 여기서부터 그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살피며 내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원망을 풀기에 노력하고, 해독 속에서 감사함을찾으면서 그 길을 잘 닦는 연습을 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찾아오는 모든 이들이 꽃길만 걷게 해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다 같이 꽃내음 가득한 낙원세상에서 삽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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