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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문답

(설교) 우리의 마음가짐,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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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생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4-10-23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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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일이 없을 때, 한가할 때 우리는 주로 무엇을 합니까?

착있는 곳에 마음이 가서 그것을 하고 있지않던가요? 저는 주로 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곳에 마음이 가 있으신가요? 누구는 사진을 찍으며 누구는 웹툰을 누구는 유튜브를 누구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sns를 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앞에 말한 것들이 잡기일 수도 있지만 다 취미생활이고 적당히 적절히 한다면 인생을 유익하게 해주는 활동들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중도를 벗어나 욕심으로 그것을 하는 데에 착심이 붙어서 정작 해야 할 일들을 뒤로 미루고 5분만 더 10분만 더... 하면서 그것들을 놓치 못하는 것입니다.

법문 말씀 봉독해드리겠습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여의 보주가 따로 없나니, 마음에 욕심을 떼고,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자유 자재하고 보면 그것이 곧 여의 보주니라.]

이상 대종경 제 10 요훈품 13장 말씀이었습니다.

여의보주를 얻는 방법은 바로 무시선 무처선 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선을 하는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대범, 선이라 함은 원래에 분별주착 없는 각자의 성품 자리를 오득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공부인 바라고 하셨습니다. 선은 마음의 자유를 얻게 하는 공부입니다.

우리가 선공부를 해나가는 데있어서 끝까지 챙겨야 할 정신을 정전 무시선법 원문에 밝혀주셨습니다.

아무리 욕심나는 경계를 대할지라도 끝까지 싸우는 정신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않는 정신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 잡는 정신입니다.

아기들이 걸음마를 뗄 때 수도 없이 많이 넘어집니다. 뒤로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고 앞으로 넘어져서 무릎이 다 까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넘어지면 내 마음대로 안되고 아프니까 서럽게 울면서 엄마를 찾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런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결국에는 대부분의 아기들이 두 발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그 인고의 시간을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바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정신으로 말이죠.

우리들은 지금 마음의 자유를 얻기 위한 걸음마를 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아기 부처님이 아장아장 걸을 수 있게 유무념 조목을 잡아서 마음이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정신을 고누고 마음을 항상 살피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불같이 일어나는 욕심에 끌리어 뒤로 넘어졌다 앞으로 넘어졌다 하는 순간들이 있을 겁니다. 그때 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정신으로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 포기는 김장철에 김치 담글 때 배추 한 포기 두 포기 할 때나 쓰는 말 아닙니까? 경계에 끌리지 않을 때까지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다음은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않는 정신입니다.

습관을 고치는데 걸리는 물리적 시간은 약 3개월 이라고 합니다. 3 개월 동안은 끊임없이 무한 반복해야만 나쁜 습관은 고쳐지고 좋은 습관은 길들여 집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날 때 알람을 듣고 바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알람이 울리면 알람을 끄고 5분만 더... 하고 다시 자리에 눕는 안 좋은 습관이 있습니다. 이 습관은 저의 일과 중에도 스며들어 5분만 더... 10분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정해 놓은 시간을 넘기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 사소한 습관 하나가 나의 일과에 조금씩 침투해서 시간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에이 ‘5분 더 잔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겠어?’ 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않게 넘어가고 이 나태함을 계속 방치 한다면 반드시 언젠가는 나의 앞 길을 가로막는 두터운 업장이 될 것입니다.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않는 정신을 늘 챙기면서 하루 일과를 살아간다면 업장이 두터워지기 전에 초기에 발견하여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 탓, 환경 탓, 장소 탓, 남 탓만 하던 원망 생활이 공부할 기회가 또 찾아 왔구나! 하면서 감사 생활로 바뀌게 될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 잡는 정신입니다.

이것을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 해주신 것이 바로 유무념 공부입니다. 마음이 끌리는지 안끌리는지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그 마음을 대처하는 요령과 방향이 잡힙니다.

대산 종사님께서는 제 4 적공편 57장에 유무념 대조 공부는 가까운 주변에서부터 대조 건수를 찾아야 하나니, 자기와 먼 공부 표준을 잡거나 무관한 일을 건수로 잡으면 실속 없는 공부가 되기 쉬우니라. 유무념 대조를 오래오래 계속하다 보면 마음의 큰 중심이 잡혀 공부 표준이 서고 감각 감상이 수없이 일어나 일기 기재할 것이 많아지며, 심신 작용 간 시비 이해에 밝고 바른 마음이 길들여져서 삼라만상이 나에게 법문을 설하는 부처님으로 보이게 되어 마음에 힘이 생기고 중심이 잡혀 경계와 내가 둘이 아닌 평안함과 고요함이 그대로 일관되느니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1학기 때 유무념 조목으로 하기 싫은 마음 알아차리기로 잡았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계속 살피다보니 어느 순간에 가장 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은 바로 알람이 울릴 때입니다. 1분이라도 더 자고 싶은 착심에 끌려 해야할 일들을 뒤로 미루고 나중에 시간이 임박해서 부랴부랴 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2학기 때는 유무념 조목을 더 구체화 시켜서 알람 맞춰 놓은 시간에 일어나기로 잡았습니다. 아직까지는 알람이 울릴 때 나태함을 단칼에 끊어내고 일어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을 잡아감으로써 내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 보이고 또 어디로 가는지 보이게 되니까 그곳으로 안 끌려가게 마음을 지키는 힘도 길러지는 것 같습니다.

 

마무리 정리 하겠습니다.

 

첫 번째, 아무리 욕심나는 경계를 대할지라도 끝까지 싸우는 정신입니다. 아기들이 걸음마를 띨 때 수천 수만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는 포기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포기는 배추 셀 때 뿐입니다!

 

둘 째,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않는 정신입니다. 경계를 당할 때마다 시간 탓, 장소 탓, 환경 탓, 남 탓하는 원망으로 생각 할 것이 아니라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구나! 하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자!

 

셋 째,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 잡는 정신입니다. 관념적인 유무념 공부가 아닌 밀도 있는 유무념 공부를 통해서 내 마음이 어디로 끌려가는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끌려가는 마음을 대처하는 요령과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취사하는 주의심을 길러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취사력을 양성 해야합니다. 유무념 공부는 정신 개벽의 열쇠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세 가지 마음 가짐으로 언제 어디서나 선공부를 지극 정성으로 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고 여의 보주를 자유 자재로 부리는 대종사님의 심통 제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상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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