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설교) 원기 110년 3월 6일 목요예회 설교(고서연_싫어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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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고서연 |
작성일 | 25-03-06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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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_0306 목요예회 설교 원고
20221001 고서연
설교 제목 : 실어증 (싫어증)
말씀하시기를 [사람마다 각각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있는데 범부는 그 하기 싫은 일을 당하면 거기에 끌리어 인생의 본분을 잃어버려서 정당한 공도를 밟지 못하고 번민과 고통을 스스로 취하나니, 이러한 사람은 결코 정신의 안정과 혜광을 얻지 못하나니라. 그러니 마땅히 하고 싶은 데에도 끌리지 말고 하기 싫은 데에도 끌리지 말고 항상 정당한 도리만 밟아 행하여 능히 천만 경계를 응용하는 사람은 될지언정 천만 경계에 끌려다니는 사람은 되지 말라.] 이상은 대종경 제3 수행품 20장 말씀 중 일부분이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우리는 왜 하기 싫음에서 자유로워야 하는가를 주제로 함께 공부하려 합니다.
오늘의 설교 제목을 보고 모두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실어증...흔히 어떠한 이유로 언어 기능을 하지 못하는 증상을 말할 때 실어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할 저의 병증은 받침에 히읗을 붙인 싫어증입니다.
앞에서 봉독했던 법문의 내용처럼 우린 모두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하기싫은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대종사께서는 정전 제2교의편 팔조에서 신분의성으로써 돌려버려야 하는 사연사조를 밝혀주셨습니다. 그 중 나라는 것을 밝혀주셨는데, 나라고 하는 것은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하기 싫어함을 말합니다. 한자로는 [게으를 나]인데 여기에는 미워하고 싫어하고 의욕이 없는 것도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정신과 육신이 나태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럼 우리 마음에 나태함은 왜 올라오는 것일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오늘은 두 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뚜렷한 목적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종경 교단품 11장을 보면 이완철 선진님의 지게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종사께서 이완철 선진에게 짐을 지고 같이 가자~ 하셨지만 완철 선진님께선 지금 저는 교당 수축을 하고 있어 여러 인부를 부리고 있고... 교무의 위신상으로도 난처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니 대종사께서는 오창건 선진에게 대신 지게를 맡기시고 따로 완철 선진님을 부르십니다. 이후 전무출신의 본문에 대해 말씀하시며 엄중히 경책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먹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내가 이것을 왜 해야하는지 목적이 뚜렷하다면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와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좌선이 하기 싫고, 공부가 하기 싫어도 그 마음을 돌리고 돌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이고, 대종사께서 밝혀주신 길도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목적의식이 없이 평소 습관대로, 나태했던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면 결국은 영생을 나태하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왔을 때 그것을 왜 해야하는가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삶을 개척해야하겠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은혜 입은 내역을 잊어버리며 공익심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우린 살면서 참 많은 은혜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 아니 반 나절만 놓고 보아도 받은 은혜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 은혜 입은 내역을 모르고 은혜 받는 것이 당연해지면 공익심을 놓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때가 바로 하기 싫은 마음, 나태한 마음이 드는 경계인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봉공작업을 하는 것도 받은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은 하자는 목적이 있는데 받은 은혜는 생각하지 않고 그 1시간 일 하기 싫고 나 혼자 편한 것만 생각하면 하는 척만 하기도 하고 대충대충 합니다. 하지만 공익심이 있으면 나태한 마음이 올라왔더라도 그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저도 얼마 전 제가 받은 은혜의 내역을 까맣게 잊어러비고 공익심을 놓쳐서 정말 하기 싫은 마음에 숨 참고 다이빙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러시아 졸업 연수 팀장.... 정말 하기 싫어 눈물이 퐁퐁 솟아올랐습니다.
그 마음이 더 심해지면서 어떻게 동기들에게 복수를 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 무서운 마음이 드니 알 수 있었습니다. 공익심이 없으니 나태한 마음이 드는구나.하고 말이죠.
그래서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공익심있는 사람이 되자! 하는 마음으로 돌리고 돌리고 또 돌리니 그제서야 도반들이 저에게 ‘도와줄게 있으면 언제든지 부탁해도 된다.’하면서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보여졌습니다. 얼마 전 러시아 연수 회의를 할땐 한 교우가 서연교우님을 당연히 도와줘야죠! 라며 지친 저를 북돋아주었습니다. 아마 계속 싫은 마음에 눈이 멀었다면 도반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이 이외에도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오는 이유는 많습니다. 너무 힘을 빼버려서 나태해지기도 하고, 내가 못하는 것에 대해 나태해지기도 하고, 뭐만 하려고 하면 핑계만 대며 나태해지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있지만 나태에 빠져 남에게 미루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린 앞에서 봉독한 법문처럼 하기 싫은것과 하고 싶은 것에 자유자재하며 중도를 잡아 살아가야 합니다. 제가 실제로 해보며 가장 추천드리고 싶은 방법은 하기 싫은 일이 정당하다면 나의 속도에 맞춰 조금씩이라도 해보는 것입니다.
대종경 실시품 2장에서는 두 명의 실상사 노승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노승들이 젊은 수행자에게 참선을 하라고~ 하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으니 막 꾸짖었습니다. 그런 노승들을 보며 대종사께서는 “남의 원 없는 것을 강제로 권하는 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영영 그 일을 싫어하게 함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법문이 참으로 와닿았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학교에서 정해준 독경 운곡을 해야하는 경계였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정해준 독경 운곡으로 독경을 진행하라고 하는 것을 저~~엉말 싫어했습니다. 저도 이 독경을 하기 싫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 도대체 난 왜그럴까, 왜이렇게 순응이 되지 않을까 하고 원인을 찾아보았는데 그러다 실시품 2장을 읽는 순간 뒷통수가 얼얼했습니다. 대종사께서는 앞에서 언급된 노승들에게 금 채굴 예화를 들어주시며 저 바위 속에 금이 들어있는 것을 안다면 내가 먼저 채굴해서 광채있게 써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왜 독경 운곡을 하기 싫은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할 때조차 직접 해보지도 않으면서 머리로만 분별을 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번에 이 싫은 마음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걸 알기에 조금씩, 천천히 돌리는 연습을 해보았습니다. 하기 싫어도 열 번 중에 한 번은 마음 내서 해보고, 들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난 결제기도 1일차 때 주례를 맡았는데 그때도 독경을 할 시간이 되니 습관적으로 그 독경 운곡으로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그때 마음을 다잡고 법문을 떠올리며 처음으로 불단에서 그 운곡을 해봤습니다. 그렇게 해보니까 평소에 그 독경 운곡을 따라하지 않을 때 자꾸만 올라왔던 불편함이 사라져있었습니다.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오면 마음에서 원을 세우기도 힘듭니다. 그러니 그 하기 싫은 일을 실행으로 옮겨보면서 왜 내가 하기 싫어 했는지, 못 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를 알아보아야겠습니다.
나태하게 살았을 때 가장 아쉬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수많은 분들의 은혜 속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나태함에 빠져 순간 순간을 허송으로 보낸다면 얼마나 아쉽고, 어리석고, 배은인 것일까요. 그러니 우리 모두 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나도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신분의성으로 돌려봅시다. 세상을 바꿀 생각을 할 때엔 자기 자신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당부드리며 이상 설교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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