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설교) 원기 110년 3월 27일 목요예회 설교 (서석준_인과보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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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서석준 |
작성일 | 25-03-27 2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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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 보은 헌공
(110.03.27)
이번주가 벌써 3월의 끝자락입니다. 학기 초에 학년별로 작성할 서류가 있어 학번과 이름을 썼더니, 어떤 부처님께서 “석준교우, 20학번이에요? 화석이다”라는 말을 하더군요.
여기 계신 분들은 과거 전생에 2000년대 학번도 계실테지만, 저는 늘 막내였다가, 늘 도움만 받다가 벌써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 언젠가는 도움을 주어야 하는구나 느끼면서 곧 다가올 ‘대 보은의 날’을 잘 맞이 하기 위한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롱패딩을 껴입어도 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느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요즘 밖을 보니 날도 너무 따뜻해졌고, 밖에서 수업하기도 좋고, 세월의 흐름이 참 무상합니다. 이러다가 봄인 듯 하면 여름이고, 가을인 듯 하면 겨울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스무살일 줄 알았지만, 언젠가는 불혹의 나이가 될 것이고, 살다가 ‘좀 재미있네?’ 하면 퇴임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런 세월의 무상함을 보면서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나에게 이익이 될까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보람찬 순간은 언제입니까? 저는 주어진 일에 잘 마무리 되었을 때, 부탁받은 일이 나로 인해 해결이 원만히 잘 되어졌을 때, 혹은 후문으로 ‘석준이 덕분에 잘 해결 됐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여러 가지가 생각이 나는데요, 꼭 들으려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고맙다는 말을 건너 건너 들으면 더 보람찬 것 같습니다. 근데 고맙다는 말과 함께 복이라는 것도 함께 옵니다. 그 분께 지으면 그로부터 받는 것이 복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원인과 결과, 인과의 이치입니다.
그러니까 주면서 사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가치와 보람은 동일한 의미인데요, 남을 도와주는 것, 내 것을 내어주는 것. 그것은 큰 보람이고, 큰 기쁨입니다.
근데, 이 복을 짓는 것도 어디에서 짓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종문교우님에게 지으면 종문교우님으로부터 받고, 학교에서 지으면 학교로부터 받고, 교단에 지으면 교단으로부터 받고, 국가에 지으면 국가로부터 받고, 세상에 지으면 세상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저희 감단에서는 교화단 보은활동으로 학교 기도금 유념(금액무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은헌공을 유념하자는 의미인데요, 보은헌공은 원불교 교도의 4종 의무에 해당됩니다. 보은헌공의 정신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태어나 살면서 사은으로부터 입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아 간다는 것과 또 하나는 정법을 신앙하고 수행하며 교법을 알리고 배우는 교당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 보은헌공이 필요한 것입니다.
근데 보은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정신, 육신, 물질, 법 등 어떻게 보은하든 보은을 했다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복을 지은 그 마음이 죄를 짓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는 대종사님의 말씀처럼 상 없는 마음으로 보은을 해야합니다.
대종사님께서 서울 교당에서 건축 감역을 하시는데, 하루는 여러 일꾼들이 일을 하다가 잠시 쉬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억지로는 잘 살 수 없는 것이요, 반드시 무슨 우연한 음조가 있어야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음조라는 것은 숨은 도움이라는 뜻입니다.
대종사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 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살아가자면 우연한 가운데 음조와 음해가 없지 아니하나니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조상이나 귀신이 맡아 놓고 주는 것인 줄로 알지마는 아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이 다 각자의 심신을 작용한 결과로 과거에 자기가 지은 바를 현재에 받게 되고, 현재에 지은 바를 또한 미래에 받게 되는 것이요, 짓지 아니하고 받는 일은 하나도 없는 줄로 아나니,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고난을 억지로 면하려 하나, 지혜 있는 사람은 이미 지어 놓은 죄복은 다 편안히 받으면서 미래의 복락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며, 같은 복을 짓는 중에도 국한 없는 공덕을 공중에 심어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복록의 원천이 마르지 않게 하나니라.” (대종경 인과품15)
살다 보면 참으로 살맛 나게 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일들도 있습니다. 나의 노력으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되면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운 일은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나 복이 내게 굴러 들어올 때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남에게 일어나면 한껏 부러워하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숨어서 도와주기에 그런 결과가 온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편 나에게 크고 작은 재앙이 오면 재수가 없다고 하며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원망을 하다가 괜스레 가까운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나는 왜 남들처럼 도와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지요. 이런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면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든 피하려고만 합니다. 다급하면 하나님이나 부처님 등 자기가 신앙하는 절대자에게 구원을 요청하거나 조상이나 귀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분들이 내가 선악간에 지은 업과는 무관하게 다 숨어서 도와주거나 해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것은 인과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생각입니다.
인과란 내가 지은 대로 받는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이치인데 모든 것을 내 뜻과는 상관없이 모두 다 맡기고만 산다는 것은 스스로를 무력한 존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도와준다는 것은 내가 공을 들인 만큼 그에 감응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복을 짓는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복이 오면 방심이나 자만을 하지 말고 더욱 감사하며 선업을 지어가야 하고, 어려움이나 죄업이 다가오면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갚아야 할 빚을 갚는 것이구나 생각하고 달게 받으며 새로 짓는 업은 선하게 지어가야 합니다. 또 같은 복을 지을 때에도 한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복을 짓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복을 짓는 것이 좋습니다. 복이란 짓고 보면 그 결과가 항상 없어지지 않고 솟아나는 샘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인과의 이치란 체념하는 것만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바로 무한한 복문을 열어 가는 지름길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세월은 쉼 없이 흐르는데 준비하는 것이 없다면 허전함으로 가득 차 자신을 주체하기 어려워지겠죠.
오늘 설교를 통해서 철저한 인과의 이치 속에서 복이라는 것은 지어야 받는 것임을 확실히 알고, 보은할 때는 한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복을 짓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에 복을 짓고, 보은을 했다는 마음이 없이 상 없는 마음으로 베풀며 사는 도반님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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