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원기 110년 4월 24일 목요예회 설교_이성희(전무출신. 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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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학생 |
작성일 | 25-04-24 1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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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전.설>
[법문]
작업이라 함은 무슨 일에나 안의비설신의 육근을 작용함을 이름이요 취사라 함은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림을 이름이니라. 정전 제 2 교의편 삼학 중 작업취사의 요지입니다.
[유도]
저는 부모님께 반항 아닌 반항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전무출신 서원서 서류에 있는 학교 선택인데요. 영산에서 공부하고 싶은데, 막상 부모님께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고민고민하다 서류 제출 전날 부모님께 보여드렸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전무출신 되는건 좋다. 근데 익산 사는 애가 굳이 집 앞에 있는 원광대학교를 놔두고 시골에 있는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냐고 진지하게 물어보시더라고요.
부모님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원불교에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 더더욱 이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만 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저의 진심을 보셨는지 허락을 해주셨고, 이렇게 학교에 들어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들어와서 눈 뜨고 눈 감고를 하다 보니 벌써 4학년이 되어버렸습니다.
[전개]
부모님의 걱정과 반대에도 불고하고 저의 서원과 의지를 가지고 이 길, 이 곳에 들어와 공부를 하고 있는데, 4학년이 되는 이 시점에 진정 대종사님께서 원하시는 전무출신이 되어 가고 있는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원만한 전무출신이 되는데 있어서 한 번에 되지 않는걸 알기에, 대산종사님께서 말씀해주신 평때기 공부로서 전무출신의 인격을 이뤄나가야겠다고 공부의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 중 작업취사를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육근을 작용하는 안의비설신의 중 설, 입을 먼저 평때기 하기로 유무념 잡았습니다. 입을 사용할 때는 크게 두 가지로 사용이 됩니다.
먼저 먹을 때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할 수 있는 영육쌍전을 밝혀주셨습니다. 대산종사님께서도 자력양성의 도에서 정신의 자주력, 육신의 자활력, 물질의 자립력을 밝혀주시면서 새 시대의 새 종교로서 정신과 육신 물질까지 자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수도하는 수도인에게 육신이란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번 생 동안 수도하고 불공할 수 있는 중요한 존재이기에 육신에 불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제 몸의 상태를 알지 못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페어 서랍장에 앉아 과자를 막 먹고 식당에 가면 편식을 하며 먹고 싶은 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다 2학년이 되는 겨울, 새도반 훈련 때 구인봉 순례 후 무릎을 다치게 되었고 지금도 많이 움직인 날은 아파옵니다.
어느 날 한의원에 누워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내가 지금, 정년 퇴임까지 50년 정도 남았는데, 50년 동안 아프면 한의원에서 침 맞고 있는 나를 생각해니 ‘나 이 상태로 교화 못하겠다’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아픈 몸을 교단에 바치는 게 누구에게도 은혜가 되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관리가 필요했습니다. 내가 먹고 싶은 욕망을 한 번 절제함으로서 자력이 생기고, 대종사님의 법을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공부 기회였습니다.
이를 사실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유무념 조목으로 잡아 공부를 하고 있고, 간식을 먹었다면 무념 먹지 않았으면 유념으로 잡고 있습니다.
먹고 싶은 욕심이 나거든 무릎이 좋지 않아 한의원에 누워있을 저를 떠올립니다. 그럼 자연스레 입을 닫거나 물을 마시며 저를 다독입니다.
그렇게 공부한지 2달이 되어가는데,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건강해지고 있나요? 몸이 가벼워지니까 좌선 시간에도 다리도 안 져리고 체력도 붙어 일과에 지치지 않고 무엇보다 불공할 때가 오면 더 많이 크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무출신으로서 건강한 모습으로 교도님들 앞에서 자력으로서 가꾸어진 저를 보여드리기 위해 육신의 자활력 공부를 해나가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말입니다. [구시화문이라 하거니와 실은 구시화복문이니, 잘못 쓰면 입이 화문이지마는 잘 쓰면 얼마나 복문이 되는가.] 정산종사법어 법훈편 39장 말씀입니다.
저는 얼굴에 가면이 얇다 보니 싫거나 좋으면 얼굴에 다 드러납니다. 또 잘 투덜거리다 보니 남의 과실을 들쳐 내려던게 아닌데 의도치 않게 타인과를 범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다 보면 반드시 소리는 나게 되는데 그 소리가 뒤에서 나오고 세력이 형성이 될 때를 보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란해지고 어리석어지고 그름이 올 때, 철석같이 마음이 어두워져 정의는 어디 가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이 마음을 지금부터 염두에 두고 있지 않으면 현장에서 설교를 할 때, 단상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고, 나랑 친하면 실수도 괜찮다 하고 눈 감아주는데 별로 안 친하면 왜 그랬냐고 실수를 들쳐내 그릇 교화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럼 결국 화를 불러드리는 입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또 학교를 다니며 악인과 선인을 주변에 많이 심어놓았는데요. 악인의 씨앗을 뿌린 사람에게 악의 말을 하게 되면 악과가 열리고 선인의 씨앗을 뿌린 사람에게 선의 말을 하게 되면 선과가 열리는 건 당연한 인과의 이치입니다. 제 주변에 악인이 많나 선인이 많나 보면 잘못하다가 큰 악과가 열린 인들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큰 악과가 열리는 걸 방지하고자 또 말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말하고 싶을 때 지도인에게 문답 감정 받기를 중점적으로 잡아 공부하고 있습니다. 요란할 일이 생겼다. 계속 마음을 보고 있습니다. 누군가 다가오면 마음 나가지 않게 계속 쳐다봅니다. 그래서 표정에서 ‘나 요란해’가 있으니 감사하게도 저를 챙겨주시지만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면 분명 타인과를 할 제가 보이니 기거이 입을 닫습니다.
속은 답답한데,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분 뿐이니 오매불망 지도인만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내 마음이 몇 개의 감정으로 나타나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도인에게 방 염불 때 찾아가고 타종이 울리는 저녁 시간에 울며 말씀을 드리니, 맞춤 문답도 해주시고 저를 키워주는 방향으로 말씀해주십니다. 그러니 제 마음이 단단해짐을 느꼈습니다.
경계가 딱 와서 말하고 싶은데, 지도인에게 문답 받은 내용이 기억이 나면서 한 번 멈추고 한 생각을 문답 내용으로 돌립니다. 그럼 정말 신기하게도 요란한 쪽으로 가지 않습니다. 결국 타력 속에서 자력을 키워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설, 입 취사에 있어 전무출신이라는 목적 아래 정의 불의를 가지고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기어이 버리려는 공부를 말하고 있습니다.
전무출신의 도 7 일생동안 재.색.명.리의 낙을 이 공부 이 사업으로 바꾸고 보면 영생의 복락은 이루 말 할 수 없나니라.
내가 재색명리의 낙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진급의 길을 막고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이 공부가 이번 생만을 위한 법이 아닌 영생을 위한 법이기 때문에 지금의 낙을 즐기기 보단, 괴롭고 힘들더라도 영생의 복락으로 돌리는 힘을 가진다면 대종사님께서 원하시던 전무출신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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