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설교) 원기 111년 3월 26일 목요예회 설교 (우명은_함께 있다는게 중요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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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학생 |
| 작성일 | 26-03-30 0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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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함께 있다는게 중요해요
지은 보은은 우리가 천지와 부모와 동포와 법률에서 은혜 입은 내역을
깊이 느끼고 알아서 그 피은의 도를 체받아 보은행을 하는 동시에,
원망할 일이 있더라도 먼저 모든 은혜의 소종래를 발견하여
원망할 일을 감사함으로써 그 은혜를 보답하자는 것이며,
이상 사대강령 중 지은보은 법문입니다.
작은 키위 나무 씨앗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엿한 키위 나무가 되기까지 해를 거듭하며 땅의 품과 양분, 물과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어느덧 키위가 열리자 나무는 지나가는 이들에게 열매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지막 키위까지 건네고 난 나무는 비로소 가벼워졌습니다.
위 이야기는 제가 학교에 살아가면서 뒤늦게 알게 된 것을 짧게 쓴 이야기 입니다.
키위를 나눠줄 수 있었던 것이 나의 혼자의 힘으로만 일궈낸 것이라 착각하고 나눠준 키위들만 생각하며 힘겹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혼자서 짊어지고 외롭게 살았던 날들을 돌아보며 비로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지은 보은은 일원상의 진리를 실천하는 손과 발이 되는 강령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하는 방법은 당하는 당처마다
법신불 일원상을 모시는 것 입니다.
일원상의 내역이 사은이고 사은이 곧 우주 만유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 모든 것이 은혜이며
원만한 신앙을 실현시키기 위한 법인 것 입니다.
더욱 지은 보은은 우리가 수행과 신앙을 함에 있어 그 방법을 일러 주셨지만
실제 삶을 돌아보면 참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평등한 자리를 놓고
즉 일원상과 같은 마음을 모르고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바른 신앙의 체계를 방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은혜로 밝혀주신 말씀 속에
항상 일원상을 두고 보는 연습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은혜를 발견하는 삶에서 은혜가 보여지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은혜가 보여지는 삶은 해를 입었다는 상도 은혜를 주었다는 상도 없이 있는 그대로 보입니다.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허공같이 비고 보면 윤회의 승강을 벗어나나니, 이 빈 마음을 근본하면 항상 진급이 되고, 이 빈 마음을 바탕하여 상(相)을 떠나면 항상 은혜를 입게 되나니라. 언제든지 은혜 입혔다는 상이나 해 입었다는 상을 없애고 항상 자신의 덕 미침이 부족함을 살필지니라.]
이상 [정산종사법어 제5 원리편22]장 말씀 입니다.
은혜로 바라보기 위해서 가져야할 자세가 있습니다.
첫번째, 타력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무엇하나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음을 우리는 의미 알고 있습니다.
호흡도, 형체도, 물건도 나의 힘만으로는 얻지 못합니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몸을 다루지 못하고 엄마에게 기대어 자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타력을 이렇게 받아야 합니다. 나의 생각을 비우고 기대야
온전히 기대지고 온전히 받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평소 내가 알던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니고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그 장소가, 그 장소가 아니게 됩니다.
온전히 받아지는 그때가! 그 사람이, 그 장소의 은혜가 드러납니다.
가령 이익과 득이 없거나 어떠한 피해를 받게 되더라고
그 은혜를 받은 이후에에 해를 입었다는 상이 없으니 해독이 없는 무량 복전이 됩니다.
두번째 필요한 자세는 위력을 얻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위력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떳떳헤지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고단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보이지 않아서 심란했습니다.] 신앙이라는 기둥이 뽑힐 듯 위태로웠습니다.
어느 날, 새벽 감수성을 빌려서, 반좌로 편안히 앉아 골똘히 생각을 하였습니다.
앉아 계속 묻습니다.
“대종사님. 은혜라고 하신 모든 것이 은혜로 받아드려 지지 않습니다. 이 마음이 퇴굴심도 일어나게 하고 저 스스로를 외롭게 합니다.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간절히 빌었습니다.
간절히 빌고 고요히 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타인과는 하지마라.”
그 목소리는 대종사님의 응답이 아니였습니다. 저의 삶을 제일 잘 아는 저의 응답이였습니다.
[다른사람의 과실을 말하지 마라] 왜 이 법문이 떠올랐을까 의문이 걸렸고,
처음에는 너무 생뚱맞았지만
그냥 흘려 보내고 싶지 않아서 그 뒤로
타인과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타인과를 하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하였고,
어느 때에는 하려고 해도 스스로 브레이가 걸려 입이 절로 묶이기도 하였습니다. 입이 묶이고 마음도 묶이고 보니 알았습니다.
크고 작은 분별과 상이 나와 상대를 끊어내는 원인이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타인과를 범하지 않으므로 내가 떳떳히 사은의 앞에 있게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걸림없이 사은의 은혜를 얻도록 하는 것은 상이 없는 마음하나면 족함을 알았습니다.
온전히 빈 마음으로 바라보고 상없는 마음으로 마주봐야 은혜를 입게 됩니다.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은혜가 보이게 됩니다.
지은은 은혜를 깊이 느끼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은혜를 깊이 느끼면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 보답하는 마음에는 내가 했다는 상도 없습니다.
은혜를 받음에 보답을 하는데 거기에 상이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음에 갚는다라고 생각이 전환이 됩니다. 그러면 상 없는 행동으로 보은을 하기에 복전이 끝이 없게 되는 것이며 그렇게 영원한 복을 얻게 됩니다.
영원한 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만난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 법을 좋아해서 모인 우리라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을 두렵다고 못하고 힘들어서 못하고 혹은 원망심에 가려져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대종사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참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손바닥도 부디쳐야 소리가 나는데 이왕 나는 소리라면 은혜의 소리가 들리는 소리가 듣고 십습니다. 어떠한 고통도 은혜로 승화시킬 수 있는 우리라야 다른 손바닥을 품어주는 손바닥이 될수 있습니다. 바로 선연의 행동으로 말입니다.
상 없는 한 마음이 한 행동으로 이어져 은혜로 충만한 순간이 여러분 모두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흘려 보내지 말고.
잠깐 조용히 고요히 깊게 느껴봅시다. 그 순간을! 그 은혜를! 손바닥에 올려두고 가만히 바라봅시다.
은혜가 보이는 그 기쁨을 고요히 즐겨봅시다.
그러면 그 순간에! 이 법, 큰 스승님, 이 회상에 신심이라는 뿌리가 더욱 굳게 내려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행동으로 그리고 체험으로 믿음이 세워짐을 확인합시다.
저는 지금까지 일원상의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 밝혀주신 강령인 지은 보은을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세가지 실천 강령을 정리하여 말씀 드리면
하나, 온통 믿는 마음으로 온전히 의지하고 온전히 받아 위력을 얻읍시다
둘, 상대처에 상을 없애 사은의 앞에 떳떳해 집시다.
셋, 떳떳해진 상태로 용기 있게 행동으로 실천하여 진리에 대한 믿음을 확인합시다.
대산종사께서 해주신 법문 말씀입니다.
[우리는 은의를 제일주의로 하는
지은 보은의 사상을 확립하고
가는 곳마다 항상 은혜를 찾아 보은하여
전 인류와 일체생령이 다같이 은의 윤기로 새로운 정의가 소통하는
한 집안을 이룩하는데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
은의 윤기로 새로운 정의가 소통하는 한 집안을 이룩하는데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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