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설교) 원기 111년 3월 26일 목요예회 설교 (박선경_껍질 뚫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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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학생 |
| 작성일 | 26-03-30 0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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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전제]
“성이라 함은 간단 없는 마음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그
목적을 달하게 하는 원동력이니라.
” 이상 정전 진행사조 중
말씀입니다.
[유도]
어제 향산님께서 아직 새싹들이 덜 올라와서 영상을 못 찍는다고
답답해 하셨는데,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이 연두색
새싹이죠. 고슬고슬한 흙 알갱이들 사이로 이렇게~ 머리를 내밀며
돋아납니다. 이게 바로 생생약동하고 뻗어 나가는 ‘나무 목’
기운입니다.
[전개]
우리들은! 봄을 꿈꾸는 자들입니다. 누구나에게 하나씩 주어진 여래의
씨앗을 내 안에서 싹 틔우고, 주변 인연들 안에서도 그 싹을 틔울 수
있게 도와주고자 우리는 서원합니다.
스승님들이 밝혀주신 길대로 끝까지 걷기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큰
우리들의 꿈은 이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다만, 그 길을 끝까지 걷는
‘지속성’인 ‘정성 성’ 자가 때로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늘은이 서원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이 ‘정성 성’을 실천해야 할지,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새싹의 촉촉한 머리가 따스한 햇살을 보기까지는 씨앗의 딱딱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진통을 겪어야 합니다. 세상이 가장 깜깜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이 바로 껍질이 갈라지기 직전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나무 목 기운은 밖으로 뻗어나가는 기운도 맞지만,
씨앗 껍질이 뚫리기 전에 그 뻗어나가고자 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답답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씨앗에는 자신을 잘 키워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두가지 능력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뚫고 뻗어나가는
힘; 그리고 때를 알고 기다리는 힘.
우리도 같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뚫고 가르고 나와야 하는 껍질이
무엇인가요? 네. 바로 우리의 업장들이겠죠. 사주팔자를 갈아 엎고
거듭나는, 인간개조 과정 중인 우리는, 스스로 가장 싫고 부끄럽고,
진짜 회피하고 싶은 허물들을 끝까지 마주하면서 변화를 일구어 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진짜 치열합니다. 이 껍질이 충분히 불고 갈라지고
분해되기 직전에 가장 깜깜하고 비좁고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바로 이
때 우리는 그 압력을 피하지 않고 때에 맞게 뚫고 나와야만 여래의
싹을 틔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또한 자연의 이 두가지 힘을
빌려야 합니다. 뚫고 뻗어나가는 힘; 그리고 때를 알고 기다리는 힘.제 이번 학기 정기계획서의 “서원” 란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정성*을* 다하자! / 정성*만* 다하자!” 이 두가지는 정성의 새로운
해석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정성을 실천하려고 할 때에 빠지기 십상인
두가지 함정을 피하게 해주는 요령입니다.
첫째,
“정성*을* 다하자!”
정성*을* 다했을 때에 우리는 뚫고 뻗어나가는 힘을 얻습니다. 껍질
밖에 햇살이 얼마나 따뜻한지 아직 새싹은 모르지만 계속해서 껍질
속에서 온몸으로 위로, 밖으로 뻗습니다. 수행편 제7장 무시선법에
나오는 “끝까지 싸우는 정신”이 바로 그것이고, 우리는 이를 원리와
표준삼아 정성을 다하는 실천을 합니다. 지금까지 나의 성격,
성향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나의 가장 굳은 습관과 생각 패턴들.
그런 것들을 당연히 회피하고 미루고 싶지만, 바로 그 때가 싸우는
정신을 챙겨서 정성*을* 다할 때인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 정신을
차리고 [ 노 래 ] “공부할 때가 돌아온거야~
” “염두에 잊지 말고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을 잡고 가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저를 가두고 있는 두꺼운 껍질에 떵!하고 부딛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싸우는 정신이 포착된 감각감상 일기를 한편
읽어드리겠습니다.3월 13일 금요일, 입니다.
“
...오래된 감정 뭉치가 부—욱 올라오기
시작했다. 얘가 하루 종일 어른어른거리며 봐달라고 아우성친다.
아직… 찝찝한 무언가가 항상 배경에 잔잔히 깔려있었는데.
이건가보다.
그래도 오늘은 이 것에 흔들리기는 해도 도망치거나 도반들 얼굴을
보지 못할 정도로 속아 끌려가버리지는 않았으니 / 또 한층 더 깊이
정화되려고 이것이 올라오나보다 / 사은님,
…진짜 파워워시 싸이클에
넣고 세척해버리시네요..감사한데,,,아프네요,,
”
저번 학기까지만 해도 무시선법의 원리를 전혀 몰라서, 업장을 마주할
때마다 고뇌에 폭 빠져서 몇주씩 괴로워했는데요. 이번에는 ‘싸우는
정신’으로 마음의 대중을 잡고 가니 예전만큼 깊이 빠져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중을 잡고 있었다고 해서 계속 경계에 이겼냐
하면, 아닙니다. 바로 그 다음날은? 끌려갔습니다. 그럼 그렇게 싸우다
업력에 눌렸을 때에는 어떡해야 할까요?
여기서 우리는 정성*만* 다자고 다짐해야 합니다. 싸우는 정신을
계속 내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잘 싸우고 있는 것인지, 성장의
증거가 있는건지 없는건지 모르겠을 때 우리는 주로 스스로에게
화살촉을 돌립니다. 왜 더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지 물으면서도사실 그냥 나의 진실된 노력에 시간의 축적이 더해져야 할 뿐이라는
그 정답은 계속해서 외면합니다. 공부라는 명분 하에 자신을
몰아세우는 업을 키우고,
‘정성’의 표준은 왜곡됩니다. 싸우는 정신은
자학과는 완전히 결이 다릅니다. 자신을 학대하면서는 여래의 씨앗을
틔울 수 없어요. 그 아무리 조용한 마음 속 학대더라도. 새싹은 물과
온기와 적당한 압력으로 틔우는 것이고, 우리도 가장 어려울 때에
스스로를 살리고 살려서 공부시켜야 합니다.
어떻게 싸우는 정신을 놓지 않고 살려서 공부시키냐? 하면, 좌선의
방법으로 가봅시다. 좌선할 때 우리가 단련하는 마음과 평상시에
무시선으로 우리가 단련하고 사용하는 마음이…같죠! 그 마음의
원리대로 마음 고삐를 잡는 방법을 한번 보겠습니다.
1.
“절대로 그것을 성가시게 여기지 말며” 7조.
2.
“곧 다시 챙겨서 [단전에] 기운 주하기를 잊지 말라.
” 2조.
성가심은 불필요한 감정적 괴로움일 뿐입니다. 무언가를 성가시게
여기면 그것은 오히려 더 치성하고 나는 거기에 더 매몰됩니다.
대종사님께서 여러 차례 밝혀주신 불변의 이치입니다. 내 발목을 잡는
그 업력도, 그 업장이 올라옴으로 인해 느끼는 그 캄캄함과
답답함까지도,
“절대로!” 성가시게 여기지 말자는 표준으로 계속
올라오는 그 성가심을 놓고 또 놓아야 합니다.좌선 때 망념을 알아차리고 단전으로 돌아가듯, 우리는 수도인의
생활과 공부의 단전인 ‘서원’으로 끊임없이 돌아와야 합니다. 끊임
없는 서원 반조를 하는 것입니다. 이 공부의 본래 목적, 나를
살리겠다는 목적, 세상을 살리겠다는 목적으로 마음을 찍고 또 찍다
보면, 업장과 엎치락 뒤치락 하는 와중에도 정성은 끊기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사고가 이러한 표준으로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서원을 새기고 새기고 새길 힘 밖에 없다면 나는 그것만 하리라.
’
‘정성*만* 다하리라’
. 그리고 진짜 정성*만* 다하다 보면, 번뇌와
업장은 조금씩 녹아서 흙으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나무 목’자에는 시간만 주어지면 쇳덩어리와 콩크리트까지 삼켜서
생명으로 바꾸어버리는 활력이 담겨있습니다. 우리 안에 자라고 있는
여래의 씨앗에게 필요한 것은 지속성과 시간, 이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느새 우리 안의 여래의 새싹은 껍질을
떨쳐버리고 햇살을 볼것이고, 우리 주변에서 가장 차갑고 생명력 없는
쇳덩이와 콩크리트도 곧 그 활력을 이기지 못해 꿈틀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강령/다짐]
오늘 ‘성’의 실천법으로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끝까지 싸우는 정신’으로 정성을** 다해** 업장을 뚫고 나갑시다.또한 그 과정을 ‘성가시게 여기지 말고’ 오직 서원의 단전으로 돌아와
정성만** 다합시다
업장을 마주해서 이 두가지를 행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영생적
지구력을 갖출 것이고,
‘정성 성’자의 참된 실천이 우리의 공부길을
완성해줄 것입니다.
[기원]
참된 정성으로 여래의 싹을 틔우시기를 간절히 염원드리면서 설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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