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설교) 원기 111년 09월 17일 목요예회 설교 (송동규_어떤 방향으로 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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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송동규 |
| 작성일 | 26-09-17 1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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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어떤 방향으로 갈까?
전제
「사람의 일생에 그 방향의 선택이 제일 중요한 것이며, 이미 방향을 정하여 옳은 데에 입각한 이상에는 사심 없이 그 목적하는 바에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바로 성공의 기초가 되나니라」
이상 대종경 제3 수행품 11장 말씀입니다.
유도
저는 예전에 하루를 보내면서 특별히 방향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휴대폰을 보거나 게임을 하고, 해야 할 일이 있어도 “조금 있다가 해야지.” 하면서 미루곤 했습니다.
그때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그냥 일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행품 11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 세 사람이 모여 앉았는데 한 사람은 기계의 연구를 하고 있으며, 한 사람은 좌선을 하고 있으며, 한 사람은 그저 무료히 앉아 있다 하면, 외면으로 보아 그들이 앉아 있는 모양은 별로 다를 것이 없으나, 오랜 시일을 계속한 후에는 각각 큰 차이가 나타나게 될 것이니, 기계 연구를 한 사람은 어떠한 발명이 나타날 것이요, 좌선에 힘쓴 사람은 정신에 정력을 얻을 것이요, 무료 도일(無聊度日)한 사람은 아무 성과가 없을지라, 이와 같이 무엇이나 그 하는 것을 쉬지 않은 결과는 큰 차이가 있나니라.」
이 말씀을 보면서 ‘나는 그동안 무엇을 반복하고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국 내가 매일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쌓여서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원불교에 들어와 이 법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결국 성불제중, 서원을 향한 길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에 그냥 남는 시간에 휴대폰을 보거나 게임하는 일상에 대해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방향이 생기니 이런 일상에 대해 고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스스로를 돌아볼 때 고쳐나가야 할 것들, 공들여야 할 것들이 보였습니다.
전개
제가 5분 전 모임을 유무념으로 챙겨보려고 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대종경 과제를 하고 있었는데, 수업 시작 15분 전까지 과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계산해 보니 옷을 갈아입고 가도 수업 5분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과제를 하다 보니
‘조금만 더 하면 이것까지 마무리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까지 하기로 한 과제였기 때문에 끝까지 해놓고 싶었습니다.
결국 과제를 계속했고, 강의실에 늦게 도착했습니다.
급하게 들어가다 보니 마음도 정리가 되지 않았고, 수업에 집중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날 했던 과제와 관련된 질문을 받았는데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시간을 잘못 계산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어느 순간
‘끝까지 잘해야 한다.’
‘완벽하게 해놓고 가야 한다.’
는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입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마음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오히려 그 순간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수행품 11장에서는 “노력을 계속”하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계속 노력한다는 것은 내가 하던 일을 무조건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일까?
대산종사법어 교리편 65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동시 삼학 공부로 일을 당할 때마다 멈추는 공부를 하여 일심 정력을 쌓고, 멈춘 후에는 다시 생각을 궁굴려서 바른 지각을 얻고, 또 옳은 판단을 얻은 후에는 바로 취사를 해서 결단 있는 실천을 하자는 것이요.」
이 말씀을 통해 저는 계속 노력한다는 것이 무조건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생각하고 판단해서 바르게 취사하는 것도 공부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5분 전 모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간을 보고 ‘지금은 과제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멈추고 수업을 준비할 것인가?’ 생각하고 선택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유무념을 단순히 ‘절대로 놓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한 번 챙기고 상황을 살펴보며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해서 취사하는 공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도 5분 전 모임을 항상 잘 챙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한 번 놓쳤을 때는
‘그래, 놓칠 수도 있지. 다음에는 잘 챙겨보자.’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번 놓치는 일이 반복되면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나는 이것도 못하나?’
‘이것도 잘 챙기지 못하면 다른 것도 잘 챙길 수 있나?’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한 번 놓친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일을 가지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저 자신을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잘하고 싶은 마음이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이어졌고, 뜻대로 되지 않자 이번에는 자책하고 낙망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화단 회화 때 한 교우님께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실수할 수도 있어. 놓아도 돼. 완벽하게 할 필요 없어. 괜찮아.”
처음에는 단순한 위로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 말이 제 공부와 연결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이 말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다시 방향을 챙겨보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방향을 잃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5분 전 모임을 한 번 놓쳤다고 해서 성불제중이라는 방향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실패한 것에 집착하고, ‘나는 그런 사람이다.’라고 단정하고, 다시 해보기를 포기하는 순간 그 방향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잘되지 않았을 때
‘나는 왜 이것도 못하지?’
라고 생각하기보다,
‘왜 못 지켰을까?’
‘다음에는 무엇을 다르게 해볼까?’
하고 다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려고 합니다.
‘괜찮아. 다시 한 번 챙겨보자.’
저에게는 이것이 수행품 11장에서 말씀하신 ‘노력을 계속하는 것’의 의미와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계속 노력한다는 것이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실수할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돌아보고, 다시 마음을 챙기고, 다시 그 방향을 바라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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